깊은 곳이 깊은 곳을 부름

질그릇 안의 보배
April 9, 2020

얕은 것은 결코 깊은 것을 만질 수 없고 외면적인 것은 결코 내면적인 것을 만질 수 없다. 깊은 곳은 오직 깊은 곳에만 반응한다. 우리의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의 깊은 곳을 만질 수 없다. 우리의 삶에 깊은 것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삶에 피상적인 영향만 줄 뿐이다.

시편 42편 7절의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라는 말은 “깊은 곳과 깊은 곳이 서로 부르며”로 번역할 수 있다. 오직 깊은 곳에서 부르는 것만이 깊은 곳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얕은 것은 결코 깊은 것을 만질 수 없고 외면적인 것은 결코 내면적인 것을 만질 수 없다. 깊은 곳은 오직 깊은 곳에만 반응한다.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깊은 곳을 만질 수 없다. 우리의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의 깊은 곳을 만질 수 없다. 오직 우리 속 깊은 곳에서 나온 것에만 다른 이들이 깊은 속에서 반응할 수 있다. 어떤 메시지를 들을 때 우리의 깊은 곳을 만지는 유일한 것은 말씀 전하는 사람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어떤 것이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받은 도움은 얕은 것에 불과하고 그저 피상적인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곳의 중요성을 보아야 한다.

깊은 속에 있는 뿌리

말씀을 전하거나 들을 때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를 뿌리는 사람에 대한 비유 속에 들어 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릴 때, 어떤 씨들은 길 가에, 어떤 씨들은 흙이 얕게 덮인 바위 위에, 어떤 씨들은 가시덤불에, 어떤 씨들은 좋은 땅에 뿌렸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에게 네 종류의 태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주 예수님은 흙이 얕게 덮인 바위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이는 곧 위는 흙이고 아래는 바위인 곳이다. 이러한 곳에 뿌려진 씨는 매우 빨리 자라지만 해가 돋아 내리쬐면 뿌리가 없어 즉시 말라 버린다. 뿌리란 무엇인가? 뿌리는 땅 아래로 자라는 것이다. 잎이란 무엇인가? 잎은 땅 위에서 자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뿌리는 감추어진 생명을 말하고 잎은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생명을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밖으로 드러난 생명은 많으나 감추어진 생명은 매우 많이 결핍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바꾸어 말해서, 깊이 감추어진 생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면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생활이 어느 정도 되는가? 여러분의 모든 영적 체험을 다른 사람이 다 알고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뿌리가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미덕을 사람들 앞에서 다 보이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여러분의 깊은 속에 있는가? 만일 여러분의 모든 체험이 드러나고 나타났다면, 여러분의 모든 성장은 위로 자란 것이지 아래로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다.

바울의 깊은 체험

바울은 “자랑하는 것이 참으로 무익하지만, 내가 자랑하지 않을 수 없기에, 주님의 이상과 계시를 말하겠습니다.”(고후 12:1)라고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을 쓴 것은 자신에게는 무익한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한 것이었다. 그가 “주님의 이상과 계시”를 말한 것은 부득불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많은 이들이 주님의 이상과 계시를 조금 받으면 즉시 나팔을 불어 모든 사람이 알게 한다. 바울은 주님의 이상과 계시를 말하면 자신에게 유익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말했는가? 그것은 거기에 바울이 사도인 것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리스도인 믿음의 기초에 관한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불 그렇게 한 것이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는데(이 사람은 바울 자신이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갔습니다.”라고 말한다. 십사 년 전의 체험을 이제야 말하는 것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바울은 뿌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러분에게 바울의 사역과 같은 사역이 있으려면 먼저 바울의 뿌리와 같은 뿌리가 있어야 하고, 바울의 외적 생활과 같은 생활이 있으려면 바울의 내적 생명과 같은 생명이 있어야 한다. 바울의 밖의 능력과 같은 능력을 가지려면 바울의 내적 체험과 같은 체험을 가져야 하고, 바울의 드러난 능력과 같은 능력을 가지려면 바울의 은밀한 체험과 같은 체험을 가져야 한다.

히스기야의 얕은 생활

이사야서 39장은 바빌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치료받았다는 것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서신과 선물을 보낸 것에 대해 말한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를 보전하지 못했다. 성경의 기록은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사 39:2)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보물 창고를 보인 것은, 그가 십자가의 처리를 받지 않았고 천연적인 생명이 처리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의 뿌리가 밖으로 훤히 드러났고, 그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과 가진 모든 것이 바빌론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히스기야에게는 뿌리 곧 감추어진 생명이 없었다. 그러므로 신언자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조상들이 쌓아 온 것이 모두 바빌론으로 옮겨지고 남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사 39:5-6). 이것은 남에게 보인 만큼 우리 자신의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의 영적인 생명을 사람들 앞에 전시한 만큼 여러분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간증을 하되 자신을 드러내지 말 것

그렇다면 우리는 간증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바울도 간증했고, 역대로 하나님의 많은 자녀들이 간증했다. 우리도 마땅히 간증해야 한다. 그러나 간증하는 것과 자신의 체험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간증하는가? 다른 이들이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간증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할 수 있지만, 그러한 일을 뉴스처럼 다른 이들에게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뿌리가 없는 것이다. 뿌리가 없다는 것은 은밀한 보물이나 생명의 체험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떤 체험들은 덮어 두고 남겨 두어야 한다. 모든 것을 드러낸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사람들 앞에 모든 보물을 드러내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노략질당하며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과 드러냄은 함께하며, 영적인 메마름과 드러냄도 함께한다. 우리가 더 깊은 곳을 향하고 아래로 뿌리를 내린다면, 결국 ‘깊은 곳이 깊은 곳을 부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내적 생명의 깊이로부터 풍성함을 내놓을 수 있을 때 다른 이들의 삶이 깊이 영향받을 것이다. 깊은 곳이 깊은 곳을 만질 때 깊은 곳이 깊은 곳에 반응할 것이다. 우리의 삶에 깊은 것이 없다면 우리의 피상적인 봉사는 다만 다른 이들의 삶에 피상적인 영향만 줄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오직 ‘깊은 곳이 깊은 곳을 부른다’.

[한국복음서원에서 출간한 “워치만 니 전집”, 17권에서 발췌하여 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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