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출생과 신약의 봉사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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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안에 나신 이는 성령으로 되신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마 1:20하, 23)

신약의 처음 사례인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은 우리에게 신약의 봉사의 네 가지 원칙을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의 섬김을 위해서는 성경의 그곳에 기록된 방법을 모방하지 말고 그 원칙들을 배워야 한다.

종교에서 절대적으로 벗어남

첫 번째 원칙은 신약의 봉사가 종교와 그 모든 전통에서 절대적으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주요 원칙이다. 신약의 봉사는 종교와 전혀 관계가 없다. 예수님의 출생에 있어서 종교와 관계된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종교’와 ‘전통’이라는 단어는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에 의해 사용되었다(1:13-14). 그는 유대교 안에 있었으며 조상의 전통을 전부 지켰다. 그러나 주님을 만났을 때, 그는 종교에서 구출되었으며 모든 전통은 끝났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태 안에 잉태되셨을 때 종교나 전통에 관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분의 출생은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이었으며 종교적인 배경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그녀에게 왔을 때 크게 놀랐다. 누구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종교, 문화, 본성, 심지어 자연의 법칙에도 새로운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반대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에 의해 계시되고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었다. 외관상으로,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누구도 그런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겠지만, 이것이 신약의 길이다.
마태복음은 참으로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은 1장에서 그리스도의 출생으로 시작하여 25장에서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는 교회로 끝난다. 즉 그리스도로 시작해서 교회로 끝난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낳은 한 처녀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는 열 처녀로 끝난다. 우리 모두는 처녀가 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처녀들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으며 교회와 상관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서 우리는 처녀들이 되어야 한다. 신랑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또한 처녀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분을 맞으러 나가는 처녀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모셔 온 사람은 한 처녀였고,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다시 모셔 올 사람들도 처녀들이다.

인간적인 노력이나 힘이나 일이 아님

예수님의 출생에 있어서의 두 번째 원칙은 사람의 노력이나 힘이나 행함이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은 마리아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신약의 봉사 안에는 우리의 노력이나 힘이나 행함이나 일의 필요가 없다. 주님께 필요한 것은 우리의 동역이다. 우리는 “나는 주님의 여종이니, 그대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 마리아는 일을 하도록 요구받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어떤 것이 그녀 안으로 일해 넣어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주님께서 무언가를 우리 안으로 일해 넣으시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기꺼이 주님과 동역하고자 하는가? 인성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낳으시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본 원칙이며, 우리는 이 원칙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적용해야 한다. 신약의 봉사 안에는 행함이 없고 오직 누림만 있다. 만일 우리가 행함의 길을 취한다면 누림을 잃게 된다. 합당한 길은 그분께서 일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분의 행하심을 누리는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됨

세 번째 원칙은, 신약의 봉사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히 중요한 것이다. 신약의 봉사는 가르침이나 전통이나 종교로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그것은 문자에 속해 있지 않고 성령께 속해 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오실 때 우리는 그것이 전에 배운 것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된다. 가르침은 효과가 없다. 봉사는 성령께 속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계속적으로 성령과 열린 접촉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주님께 나아가서는 안 된다. 다만 어떤 일을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는 것은 단지 종교적인 것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필요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를 지키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길을 아는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배운 것은 단지 그분의 길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임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신약의 봉사는 어떤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문제이다. 방법만을 갖는 것은 문자에 속한 것이지만 주님의 임재를 갖는 것은 성령께 속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이다. 신약의 봉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

주님의 출생에서 보는 네 번째 원칙은 ‘그리스도를 낳음’이다. 성령께 속한 것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노력과 행위를 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서는 우리의 목적, 목표, 의도,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성도들은 선교 사업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낳는 일이 아니라 선교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리스도 자신이 그들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낳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과 의도가 되어야 함을 배워야 한다. “마리아 안에 나신 이는 성령으로 되신 것입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부르십시오. …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마 1:20-21, 23)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자신의 모든 일과 목적과 목표와 갈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신약의 봉사는 결국 그리스도를 낳는 것이며 이것이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 곧 구원하시는 분이시자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낳는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이 한 처녀로 시작하여 열 처녀로 끝난다는 것을 보았다. 이 책은 또한 개인적인 임마누엘로 시작하여 단체적인 임마누엘로 끝난다. 1장에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신 임마누엘을 보며, 28장 마지막 절에서 주님은 “보십시오, 나는 이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위트니스 리, 신약의 봉사, 2장,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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