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문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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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십시오. 파멸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며,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그 길이 비좁아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마 7:13-14)

이 두 구절은 두 가지 큰 원칙, 즉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을 말한다.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다는 뜻이다. 문에는 문지방이 있는데 이 문지방은 가로막고 있는 하나의 관문이다. 그것을 넘어서면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곧 전에 보지 못했던 영역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문지방이 얼마나 높든지 넘어서 문 안으로 들어서는 데에는 오 분도 채 안 걸린다. 또한 넘어갈 때 즉시 뚜렷한 차이가 있게 된다. 문에 들어선 후와 들어서기 전은 크나큰 차이가 있다. 오 분 전에 한 세계에 있었으나, 오 분 후에는 다른 세계에 있게 된다. 가령 공원 밖에 있다면 볼 수 있는 것은 흙먼지나 자동차들뿐일 것이다. 그러나 공원 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가야 할 길이 있다.

믿음의 행위와 믿음의 태도 됨

믿음은 우리가 길을 가는 원칙이다. 믿음은 하나의 문이자 길이다. 영적인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믿음에는 믿는 것과 의지하는 것이라는 두 방면이 있음을 알 것이다. 믿음에는 행위와 태도의 차이가 있다. 한 번의 믿음이 바로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것에 이어서 오랫동안 의지하는 것이 바로 전진하는 것이다. 한 번 전일하게 믿음의 행위를 갖는 것이 바로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후에 믿음의 태도를 지키는 것이 바로 길을 걷는 것이다.

모든 영적인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

우리가 믿는 것들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리스도 안에 넣으셨다. 이것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죄 사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의롭다 하심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거룩하게 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 모든 영적인 복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어떤 은혜보다 더욱 높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이기는 생활을 사모했다. 그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분 안에 거하려고 발버둥을 쳤을 뿐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늘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계시를 보여 주셨다. 그는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느냐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거듭난 사람이므로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필요는 다만 이 사실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에게 믿음의 문이었고 그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는 짧은 말이지만 이 말씀 뒤에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축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엡 1:3) 모든 복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이 이렇게 많은데 왜 많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믿고도 얻지 못하는가? 이것은 그들이 믿음의 두 방면을 모르기 때문이다.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믿음의 태도도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믿긴 했지만 다만 믿음의 태도를 가졌을 뿐 믿음의 행위가 없다. 바꾸어 말해서 그들은 결코 특정하게, 필사적으로, 전일하게 하나님의 사실을 믿은 적이 없다. 그들은 믿음의 태도를 믿음으로 착각했다. 그들이 믿음의 관문을 통과하고 믿음의 태도를 유지했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많은 복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관문을 통과한 날 모든 것을 다 얻었다는 말인가? 물론 관문을 통과하면 모든 것을 다 얻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체험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단강을 건너라고 하시기 전에 먼저 여호수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제 너는 일어나서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이 요단강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에게 주리라 한 땅으로 들어가라 네 발이 닿는 땅은 내가 모세에게 약속한 말대로 너희에게 주리라”.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은 벌써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건너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요단강을 건넜다. 그러나 그들이 요단강을 건넜다고 해서 모든 땅을 즉시 얻었는가? 사탄은 그렇게 하도록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여리고성의 성벽은 여전히 높고, 성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만일 우리였다면 하나님께 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나님,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셨기에 이미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의 성벽은 이렇게 높고 성문은 꽉 닫혀 있으니 당신의 말씀은 헛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오늘 성을 한 바퀴 돌고, 이튿날 다시 성을 한 바퀴 돌며, 육 일 동안 이렇게 행하고 나서 일곱째 날에 성을 일곱 번째 돌았다. 그런 다음 여호와께서 성을 자기들에게 주셨음을 믿고 외치자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이때부터 그들은 한 성 한 성을 얻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을 얻는 것도 이와 같다. 이는 마치 아버지가 죽기 전에 부동산 권리 증서를 아들에게 줄 때, 아들이 그 증서의 기록대로 토지를 찾아 재산을 관리하는 것과 같다. 재산은 그의 것이나 그가 아직 보지 못했더라도 이제 다만 증서에 쓰인 것에 따라 조사하고 관리하면 된다. 권리 증서를 받는 것이 바로 믿음의 행위─믿음의 문─이요, 권리 증서의 내용을 누리는 것이 바로 믿음의 태도─믿음의 길 곧 진보─이다. 믿음의 교리를 아무리 많이 들었어도 소용이 없다. 반드시 관문을 통과하여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미 가나안 땅을 내게 주셨으므로 이 땅은 내 것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반드시 권리 증서를 붙잡고 그리스도 안의 모든 복들을 받아들이라. 그런데 자신에게는 시기와 교만과 정욕이 있고, 또 사랑도 없고 겸손도 없고 온유함도 없다고 느끼고 주님께 구출해달라고 한 번, 두 번, 심지어 열 번이나 구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을 당신에게 계시하실 때, 그런 구함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을 보여 주실 것이다. 주님은, “내가 거룩함이요, 내가 온유요, 내게는 각양 은혜가 충만하다.”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을 보아야만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런 뒤에야 믿음의 길을 가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 점점 더 많이 체험할 것이다.

[워치만 니 전집, 10권, 22장,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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