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참 크리스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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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외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외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고, 할례는 마음에 있는 것이어서 영 안에는 있고 율법 조문에는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롬 2:28-29))

위 성경 구절에는 몇 가지 대비 즉 외면(겉)과 내면(속), 율법 조문과 영,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의 대비가 있다. 이 대비를 통해서 성경은 참기독교는 외적인 교리, 율법 조문, 형식이나 의식을 주의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내적인 생명을 주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기독교는 외적인 종교가 아니요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오직 내면적인 계시와 내적인 생명의 문제이다. 크리스천이란 곧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 세례를 받았고, 주일에 예배를 보러 가며, 성경도 한 권씩 갖고 있고 주기도문도 외울 줄 알고, 십계명도 알며, 찬송도 부를 줄 알며, 혹은 다른 사람이 기도할 때에 아멘도 하며 성경 이야기도 많이 앎므로 크리스천인줄 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을 크리스천이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요 10:10)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롬 8:9)라고 했다.

기독교는 내적인 계시의 문제이다

생명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요 이 신성한 생명은 곧 주님 자신이다. 사람이 주님의 생명을 얻으면 주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된다. 즉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뜻과 위임을 수행하기 위해 기름 부음받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된다. 이렇게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온다. 사도 바울은 원래 엄격한 율법의 종교적인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했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회개하고 유대 종교에서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요 사람에게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다(갈 1:12). 아, 누구든지 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내적인 계시가 없으면 그의 열심은 다 헛된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의 전통과 유전을 잘 지켰다 할지라도 주님의 생명은 전통이나 유전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크리스천이 된 것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그의 속에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갈 1:16).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사람이 계시를 얻는다는 것은 곧 성령 안에서 주 예수를 접촉하고 주 예수를 만나는 것이고, 주 예수와 직접 관계를 맺는 것이다.

기독교는 내적인 생명의 문제이다

요한복음 3장에는 ‘거듭남’에 관한 대화가 나온다. 니고데모가 말하기를 “우리는 선생님께서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신 줄 압니다.”(3:2)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3:3)라고 대답하셨다. ‘선생’이 중시하는 것은 가르침과 배움과 교훈과 지식 등 외적인 것이지만 ‘거듭남’이 중시하는 것은 영(靈)이요, 생명이요, 내적인 것이다. 소위 기독교인이라는 많은 이들이 ‘선생’이라는 문(門)을 통해 들어가려고 했다. 그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다 알고 세례를 받고 심지어 성경 안의 예표와 예언을 해석도 하고 기도와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자기가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기독교를 잘못 본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거듭나지 않고 그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크리스천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기독교는 표면적인 종교가 아니고 오직 내적인 계시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 주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신 일이 있었다. 다음날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때에 주님은 “여러분이 나를 찾은 것은 …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없어지지 않는 양식을 위해 일하십시오.”(6:26-27)라고 하셨다. 그 사람들은 떡을 배불리 먹으려고 예수님을 찾았을 뿐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들은 밖에 있는 물질적인 떡만 볼 뿐 내적인 생명의 귀함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밖에서 주님을 알 뿐 내적인 계시와 인식은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내가 생명의 떡이니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누구든지 이것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줄 떡은 곧 내 살인데,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주는 것입니다. … 여러분이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여러분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입니다.”(6:32-55).

진리 앞에서 넘어지는 크리스천

이 말씀을 오해한 유대인들은 논쟁을 벌였다. 심지어 제자들 중 여러 사람도 “이 말씀은 어렵구나.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고 말하며 수군거렸다. 그들은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걸려 넘어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표면적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많은 사람들을 주 예수께로 이끌어 왔지만 내면적인 참생명의 양식을 내놓자 제자들 중 많은 이들까지도 주님을 떠났다. 사람들은 어찌 그리도 쉽게 표면적인 것은 중요시하면서 내면적인 것은 쉽게 경시하는지! 우리는 여기서 엄중한 경고를 받아야 한다. 표면적인 크리스천은 도중에 물러가게 된다. 내적인 생명을 만지지 못한 사람은 도중에 물러가게 된다. 제자라고 불리던 이들이 물러가는 이유는 “이 말씀은 어렵구나.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는 것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 진리 앞에서 넘어진 것이다! 아, 표면적인 것은 소용이 없다. 표면적인 크리스천은 진리 앞에 설 수 없다. 어떤 이들은 크리스천이라고 자처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받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의 참진리에 부딪칠 때 알아듣지 못하고, 의심하고 오해하고, 심지어 비웃고 반대까지 한다. 그들은 기독교의 간판만을 갖고 있을 뿐 기독교의 진리는 원치 않는다. 그들은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의 ‘신학(神學)’을 따라 할 뿐이지 주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요 6:63)라고 말씀하셨다.

워치만 니 전집, 37권, 34장,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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