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니 마르다라는 한 자매가 그분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다(눅 10:38). 이 자매는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녀는 주님을 위해서 마땅히 일들을 잘해 드려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일 저일을 하고 이것 저것을 준비했다. 그녀는 매우 많은 일을 했고, 그녀의 마음은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녀의 마음이 안절부절못했을 뿐 아니라 염려할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서 그녀의 마음은 번거로움을 면하지 못했다. 그녀도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속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나무라게 되었다. 그녀는 주님 앞에 가서 주님께 말씀드렸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 두는데도 상관하지 않으십니까? 마리아에게 나를 거들어 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10:40) 주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마르다여, 마르다여, 그대가 많은 일로 염려하여 애쓰지만,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선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10:41~42). 아, 주님은 필요한 것이 오직 한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마르다는 많은 일을 했지만 주님은 필요한 것이 많은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
이 필요한 한 가지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마리아가 선택한 그리스도이다. 이 필요한 한 가지를 우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마리아가 한 대로 평안하고 안온하게 주님 앞에 있음으로 얻는다! 우리는 모두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일을 하기 원하지 않는 이는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살후 3:10). 그러나 일을 할 때 안에 안식이 없고 주님까지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하루 종일 항상 바쁘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기도도 제대로 못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동분서주하고, 영적인 많은 일을 하고, 여러 사람을 돕기 원한다. 우리의 동기는 모두 주님을 위한 것이지만 다 하고 나면 속은 마음의 염려로 어지러워진다.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일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잊어버리게 하고 마음의 띠를 풀어 놓게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어야 한다! 이 한 가지는 주님 앞에서 안식하는 것이고 주님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이다.
밖의 분주한 일과 속의 안정된 평강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평안하고 안온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 주님은 결코 일하러 가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하루의 반은 세상의 일을 하고 하루의 반은 영적인 일에 전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결코 마르다에게 “네가 많은 일을 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마르다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마르다를 일깨워, 부디 이러한 일이 그녀 안에 들어가서 그녀를 근심으로 번거롭게 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주 예수님은 그녀가 너무 많은 것을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녀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일은 하루 종일 계속할 수 있지만 근심으로 번거로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밖의 일은 결코 바쁘지 않은데 속이 매우 바쁘다. 밖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밖으로 바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속에서는 안정되어야 하고 안에는 오직 하나—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여기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한 가지는, 어떠한 환경 중에서도 우리가 그 환경에 의하여 만진 바 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몸은 바쁠 수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안에는 오직 한 가지만 있어야 하고 조금도 마음의 띠를 늦춰서는 안 된다. 밖으로는 매우 바쁠 수 있지만 속에서는 계속 하나님과 교통해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여기에는 마르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있다. 마리아는 가장 좋은 분복(分福)인 하나님과의 교통을 선택한 것이다. 밖으로는 원함에 따라 마르다가 되어도 좋지만, 안으로는 부디 마르다가 되지 말라. 밖으로는 마르다가 될 수 있지만, 속에서는 마리아처럼 완전히 주님과 연합되어야 한다. 밖은 매우 바쁘더라도 속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안정되어야 한다. 결코 밖의 일이 당신을 만지게 하지 말아야 한다. 밖의 일이 당신을 만지는 것을 거절해야 한다. 밖의 일이 얼마나 많든지 간에 결코 그것이 당신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신 안에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만 있어야 한다.
내적인 안식이 밖의 환경을 다스림
구약의 성막은 바깥마당과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다. 바깥마당에는 제사장과 레위인만 들어갈 수 있었고 성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피를 가지고 혼자 들어갔다. 신약에 이르러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려 주신다(고전 3:16).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성막의 상황과 같다. 바깥마당에서는 참으로 바쁘다. 이스라엘 사람이 수백만이었으므로 그들의 제사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른다. 또한 얼마나 많은 레위인이 거기에서 전문적으로 소나 양을 잡았는지 모르고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이러한 일들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당 안에는 하루 종일 모두 사람이 있어도 되었지만 지성소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바깥마당의 포장은 매번 당겨질 수 있었고 들어가는 사람이 많아도 되었지만 지성소의 휘장은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한 사람도 들어갈 수 없었다. 바깥마당 안은 소리로 가득 찰 수 있었지만 지성소 안에는 소리가 없이 매우 조용했다. 바깥마당 안에는 바쁜 일로 가득할 수 있었지만 지성소 안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고 매우 조용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밖으로는 수백 수천 사람과 접촉할 수 있지만 당신 자신은 가장 안정되고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밖으로는 매우 바쁠 수 있지만 영 안에서는 여전히 주님과 교통하고, 조금도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 안에서 안식을 얻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 능력은 완전히 우리 속에 있는 생명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데서 나온다. 그 가장 깊은 곳은 밖의 지배를 받지 않고, 밖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당신 속은 안정된 곳이므로 밖의 일들은 모두 당신 속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지성소는 성막 안의 모든 동작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성소 안에서 안정된 생활을 한다면 밖의 일이 당신을 만질 수 없게 되고 환경이 당신을 만질 수 없게 된다. 안식은 우리 생활의 능력이요, 평안과 안온은 우리 생활의 역량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돌아와 안식해야 너희가 구원을 얻으며 잠잠하고 신뢰해야 너희가 힘을 얻게 되건만”(사 30:15)이라고 하셨다.
[워치만 니 전집, 37권, 19장,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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