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진보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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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비울 때 더 많이 충만하게 된다.
비우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요,
충만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책임이다.

“굶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셨고,
부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눅 1:53)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가장 부족한 점 두 가지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과 하나님의 풍성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알게 되고 주님의 풍성을 알게만 된다면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모르고 주님의 풍성을 모른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알고 주님을 알게 된다면 모든 영적 어려움은 다 해결될 것이다.
주님의 풍성을 누리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또한 성령께서 역사하시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만약 계속적으로 주님의 풍성으로 채워지기 원한다면 반드시 계속적으로 비워야 한다. 자신을 비우는 것이 갈수록 더 깊어져야 한다. 매일 매일 자신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한 달이 지난 후에도 비워야 하고, 일 년이 지난 후에도 또다시 비워야 한다. 다 비운 것 같아도 얼마 후에 또 비울 것이 있는 것이 우리의 체험이다. 한 번 비웠다고 해서 영원히 비워지는 것이 아니고, 한 번 충만해졌다고 해서 영원히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복음 1장 53절에서는 “굶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셨고, 부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굶주린 자만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만일 누가 단지 관찰하거나 들어보려는 목적으로 집회에 온다면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성경 지식을 좀 얻으려고 집회에 온다면 실지의 영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내적으로 절박한 필요를 가지고 오는 이들만이, 하나님을 만나고자하는 단호한 마음을 가진 이들만이 주님의 축복을 얻는다. 영적인 진보는 오직 우리의 배고픔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마 5:6).

굶주림은 진보의 시작

성령께서 사람 속에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은 ‘갈구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영적 진보의 시작이다. 성령은 우리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게 하신다. 즉 성령은 우리의 현재 상태가 그릇되었고 영적 생활이 너무나 얕다는 것을 느끼게 하신다. 영적으로 진보하려면 자신의 현재 영적 상태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영적 진보는 언제나 더 좋은 상태를 바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실패와 퇴보의 원인은 바로 스스로 만족해 버리는 데 있다. 자만이야말로 실패의 시작이다. 언제든지 우리가 자신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그때가 곧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때요, 우리를 전진하게 하시는 때이다. 도리어 자신의 궁핍과 부족을 모를 때가 정지된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퇴보의 시작은 자만이요, 진보의 시작은 굶주림이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풍성히 채우는 역사를 하시기 위해 먼저 우리 속을 비우는 역사를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비워졌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다.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주님의 풍성은 더욱더 넘치게 된다. 첫 고개를 넘은 후 더 이상 높은 생활은 없을 것이라고, 또 더 이상 진보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서 스스로 풍성한 생명을 다 얻었다고 자족할까 봐 또 새로운 어려움을 주신다. 새롭게 충만하게 되지 않으면 새로운 어려움을 이길 수 없다. 아! 여리고의 승리를 아이성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아이성은 작은 성이다. 아이성에 비해 훨씬 큰 여리고성을 당신이 무너뜨렸었지만, 과거의 체험으로는 이 작은 아이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과거에 이루었던 승리로는 오늘의 영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현재의 새로운 영적 어려움은 반드시 새로운 능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빈 그릇이 없을 때 기름이 그침

열왕기하 4장에 기록된 말씀은 중요한 영적 원칙을 보여 준다. 그 여인과 아들에게는 오직 한 병의 기름만 있었을 뿐이다. 이 한 병의 기름이 바로, 그 후에 많은 그릇에 부었던 기름이다. 원래 있었던 그 약간의 기름이 필수적이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속에 성령이 거하는 사람에게만 성령은 역사하신다. 그 과부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빈 그릇의 수가 적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라고 분부했다. 그때 그 여인은 어떻게 하였는가?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이것이다. 곧 그 여인이 가서 빈 그릇을 빌리는 것은 바로 성령께 자리를 비워 드린다는 뜻이다. 또 조금 빌리지 말라는 뜻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한 자리만 비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자리를 비우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것도 비우고 저것도 비우고, 많이 비울수록 많이 충만해진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원칙이다. 영적 성장은 오직 계속 비우고 또 비울 때 계속 충만하게 되고 또 충만하게 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성령의 역사는 한 번 비운 것으로 영원히 충만하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계속 비우고 또 비울 때 계속 충만하게 되고 또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한 번 비운 후에 비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십자가는 우리에게 갈수록 더 많이 역사하고 갈수록 더 깊이 우리를 파낸다.
또 하나 매우 귀한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부의 아들이 ‘그릇이 없다’고 말했을 때 기름이 그쳤다는 것이다. 성령은 모든 그릇에 다 충만하게 되었고 마지막 그릇에까지도 충만하게 되었다. 만약 거기에 그릇이 더 있었더라면 기름도 더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빈 그릇이 없을 때 기름이 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름이 먼저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릇이 먼저 부족한 것이다. 그릇이 없을 때, 기름은 그친다. 기름이 그친 까닭은 그릇이 없는 데 있다. 기름을 더 붓지 못하는 것은 그릇을 더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워 드리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무한하게 비운다면 성령도 무한하게 충만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은 우리에게 빈 그릇이 있느냐, 즉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성령께 우리 안에 지위를 내어 드리느냐에 달려 있다. 성령이 충만하고 충만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비우느냐 비우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워치만 니 전집, 2집, 37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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