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힘에 겹도록 극심한 압박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져, 결국은 죽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고후 1:8-9)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기적 같은 일을 해 주실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나이며 서로 분리된 관계이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은 죽음의 고난을 통해 일하시면서 그분 자신을 내 안에 전달해 주시고 나와 연합하신다.
왜 사람은 고난을 받는가
고난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운명이다. 아무도 이것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분을 경외하며 산다면 모든 나쁜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극심한 환난을 겪었으며, 늘 하나님을 생생하게 접촉하며 사는 어떤 성도들도 끊임없이 고난을 받아야 했다. 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고난을 받아야만 하는가? 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실지적인 문제들이다. 모든 고난이 가진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되어 있지만, 오직 고난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서 실지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 안에서 실현되려면,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뿐 아니라 부활의 하나님으로 알고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부활의 하나님의 차이
우리는 왜 살아 계신 하나님과 부활의 하나님의 차이를 강조하는가? 왜냐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주실지라도, 사람이 하나님을 단지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만 알고 체험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이 사람의 본성과 섞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활의 하나님으로 사람에게 일하실 때에는 그분의 본성이 사람의 본성 안으로 일해 넣어진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많은 일을 행해 주신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고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이다. 그분의 거룩한 본성은 여러분 안으로 전혀 주입되지 않는다. 그분의 본성은 사람의 본성과 연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는 그 일을 통해 그분 자신을 사람에게 전달해 주신다. 예를 두 가지 들어 보겠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맞았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은 그들이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홍해가 갈라진 기적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분이심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지만, 그들을 위해 행해진 그 기적이 그들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조금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그들에게 내려 주시고 반석에서 물이 흘러나오게 하셨다.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여러 신성한 행사들을 보았다. 하나님은 그 모든 기적적인 일들을 그들을 위해 수행하셨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께 속한 것은 그때 그들의 존재 안으로 전혀 분배되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았을 뿐 아니라 부활의 하나님을 알았다. 바울은 힘에 겹도록 극심한 압박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후 1:8).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웠다(고후 1:9). 바울에게 부활의 하나님이셨던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해 일하셔서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셨을 때, 그 신성한 행사는 바울을 위해 어떤 것을 성취해 주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본성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수 세기가 지났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하나님을 모른 채 단지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관심한다.
부활의 하나님을 체험함
무역업을 하는 한 형제가 있었다. 그는 수출할 물건을 배에 실어서 발송하려고 하다가 물건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원래 예정했던 배가 아닌 그다음 배에 물건을 실어서 발송했다. 잠시 후에 그는 원래 물건을 실으려 했던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오, 하나님, 당신의 인도가 얼마나 완전한지요! 참으로 당신은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찬양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형제는 결핵에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장병까지 생겼다. 결핵을 치료하려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위장병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위로하며 “두 달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셨던 일을 잊으셨어요? 우리 하나님은 참되시며 살아 계신 분이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이 참되시지도 살아 계시지도 않으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기도하면 할수록 그는 더 많은 피를 토하고 위장병도 더 심해졌다. 결국 그와 아내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었다. 병으로 일을 하지 못하자, 사업도 어려워지고 돈도 점점 바닥나서 그는 완전히 절망하게 되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그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기도했다. “오, 하나님, 당신은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당신의 은혜를 신뢰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 그는 더 심하게 피를 토했고, 그와 그의 아내는 더 이상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형제 안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점차로 그는 자신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았지만, 부활의 하나님을 알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부활의 교리는 알았지만 부활의 실재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주님을 믿은 후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하나님과 독립되어 기도했고,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까지도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신의 모든 노력이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었음을 보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고 회개했다. 병이 낫는 것과 바깥의 환경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병이 낫는 것을 잊어버렸다. 바로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건강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간증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신의 생명을 살았지만, 그날부터 그는 부활의 하나님을 알고, 부활의 생명을 의지하여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주시는 것은 바로 그분을 부활의 하나님으로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라. 그분께서 계속해서 우리를 죽음의 상황으로 이끄시는 까닭은 오직 죽음 안에서만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고난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부활의 하나님을 더욱 체험함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분이 우리 안에 더욱 조성되게 하시기를 바란다.
[위트니스 리, 살아 계신 하나님과 부활의 하나님, 3장,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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