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은 하나님을 향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삶을
가리키고 장막은 헌신한 뒤에 세상을 향한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는 그곳을 떠나 벧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옮겨 가서…장막을 쳤다.”(창 12:7-8)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제단(祭壇)과 장막(帳幕)의 생활이다. 제단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고, 장막은 세상을 향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그분 앞에서는 제단을 가지며, 땅 위에서는 장막을 갖기를 요구하신다. 제단은 장막을 요구하고, 또한 장막은 우리를 다시 제단으로 이끈다.
제단의 생활
창세기 12장 7절에서 우리는 제단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본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즉각적인 결과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없는 곳에는 제단도 없다. 이 세상에 먼저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참된 헌신은 사람의 권면이나 설득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결과이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나타나셔야 비로소 우리는 자원하여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제단에 드릴 수 있다. 스스로의 결심과 노력으로는 어떤 사람도 자신을 헌신할 수 없으며, 심지어 헌신하기를 원한다 해도 실지로는 한 가지도 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헌신하게 된다. 당신이 하나님을 한 번 보고, 그분을 한 번 만지기만 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며,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 수 없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나타나심, 곧 계시로부터 오는 것임을 잊지 말라. 입으로 헌신을 말하는 사람이 모두 드리는 사람이 아니고, 헌신에 관해 말씀을 전하고, 헌신에 관한 교리를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 헌신된 사람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본 사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만이 참으로 헌신된 사람이다. 주 예수님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바울의 첫 마디는 “주님, 무엇을 해야 합니까?”(행 22:10)였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의 전환점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볼 때 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인생에 분명한 전환이 일어난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더 이상 과거에 하던 일을 할 수 없고, 자신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임하실 때 제단이 세워진다.
아브라함이 쌓은 제단은 속죄제를 드리기 위한 제단이 아니라 번제(燔祭)를 드리는 제단이었다. 여기의 제단은 주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는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가를 가리킨다. 이것은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은 제단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권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거룩하고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합리적인 봉사입니다.” 번제물을 제단에 올려놓는 목적이 무엇인가? 완전히 불태우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목적이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불태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단에 올려진 소가 그분을 위해 밭을 갈기를 원치 않으시고, 제단 위에서 완전히 불태워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제단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며, 바쁜 활동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생활이다.
장막의 생활
제단은 우리를 장막으로 이끈다. 창세기 12장 8절은 “벧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옮겨 가서”라고 말한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 이후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집인 벧엘에 거했으며, 장막 안에서 살았다. 장막이란 무엇인가? 장막은 이동할 수 있는 것이며, 어떤 장소에 뿌리를 박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제단을 통해 우리 자신을 처리하시고, 장막을 통해 우리의 소유를 처리하신다. 아브라함은 제단에서 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렇다면 그 이후로부터 그에게 아무 것도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에게는 아직도 소와 양이 있었고, 그 밖의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은 장막 안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제단에서 불태워지지 않은 것은 오직 장막 안에만 남겨 둘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반드시 제단에 드려져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어떤 것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며, 장막 안에만 남겨 둘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면, 나의 모든 소유를 다 팔고, 가지고 있는 돈은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야 합니까? 이렇게 전부 헌신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헌신을 말할 때, 아마도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두 종류의 생활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의 생활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생활에서 우리의 모든 소유는 반드시 제단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여전히 물질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을 위해 남겨 두신 것들에 대해 반드시 우리는 제단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 마땅히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장막의 생활이다.
제단과 장막의 회복
아브라함에게도 실패가 있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닥쳤을 때, 그는 제단과 장막을 떠나 이집트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그는 회복했다. 어떻게 그가 제단과 장막의 생활을 회복할 수 있었는가? 창세기13장에서 “아브람은 네게브를 떠나 여행을 계속하여 벧엘 부근, 곧 자기가 처음에 천막을 쳤던 벧엘과 아이 사이에 이르렀다. 그곳은 아브람이 이전에 제단을 쌓은 곳이었다. 거기에서 아브람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13:3-4)라고 말한다. 회복이란 제단과 장막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당신에게도 실패가 있고, 실족한 체험이 있지 않은가? 당신도 이집트에 내려가 자신의 요구나 소망이나 열망이 생기지 않았는가? 당신이 회복의 길을 찾으려면 제단과 장막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회복이 바로 제단과 장막으로 돌아온 것임을 보여 준다.
[워치만 니 전집, 2집, 37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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