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유물론인가, 유심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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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유물론인가, 유심론인가?

먼저 유물론과 유심론이라는 철학을 살펴본 후, 성경에 따른 사람에 대한 분석과 자연계에 대한 이해를 알아보자.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

철학의 두 가지 주요 학파는 유물론과 유심론이다. 유물론은 우주 안에는 물질만 있고, 우주에서 물질이 주된 것이고, 생각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물론은 세계의 통일성은 그 물질성에 있고, 물질의 존재 유무가 의식을 결정하며, 모든 인간의 사상은 물질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일단 물질이 끝나면 사상이나 의식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우주 안에는 귀신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영도 없고 혼도 없으며, 오직 물질만 있다. 사상과 의식은 물질적인 세계가 발전해서 나온 산물일 뿐이고, 생각과 혼은 물질의 존재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유물론이라는 철학이다.

유심론(唯心論 idealism)

또 다른 학파는 유심론이다. 이것은 물질적인 세계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의 감각과 의식이 세상의 기원이며, 따라서 근본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말로 하면, 유심론자들은 인간의 생각 안에 있는 관념(이데아 Idea)만이 참된 것이고, 관념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인간의 관념만이 믿을 만하고, 외적인 것들은 헛되고 거짓되다는 것이다. 중국 철학자 왕양밍(王陽明, 1472-1529)은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도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전형적인 유심론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따라 이러한 철학들을 어떻게 보는가?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유물론이나 유심론이 둘 다 어느 면에서는 옳지만 자연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보다 그 둘은 모두 자연계에 대한 부분적인 관찰과 이해에 근거한 것이므로, 둘 다 완전하거나 정확하지 않다. 분명 물질은 존재하지만, 물질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또한 분명 관념이 존재하지만, 관념만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부조리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영(spirit)과 혼(soul)과 몸의 세 부분이 있음

성경에 의하면, 인간 존재는 영(靈)과 혼(魂)과 몸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살전 5:23). 겉 부분은 사람의 몸이고, 속 부분은 사람의 혼이며, 가장 깊은 부분은 사람의 영이다. 그러므로 속에서부터 밖을 말하면 우리는 영과 혼과 몸이고, 밖에서부터 속을 말하면 우리는 몸과 혼과 영이다. 사람들은 종종 영과 혼을 맞바꾸어서 사용하지만, 사실상 그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영은 영(靈)이고, 혼은 혼(魂)이다. 인간 존재에 이 세 부분—영과 혼과 몸—이 있는 것처럼,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는 것에도 세 방면 혹은 세 층이 있다. 첫째로, 몸은 외적인 물질세계를 감지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로, 혼은 정신적인 영역, 심리적인 세계를 감지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로, 인간의 가장 깊은 부분인 영은 하나님을 감지하고,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있는 하나님에 속한 것들을 감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객관적인 존재의 세 영역을 아는 세 부분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의 존재도 생각의 존재도 부인하지 않고, 더 나아가 사람의 영이 존재한다는 것과, 사람의 영으로 접촉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인간 존재와 외적이고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그들의 인식 또한 가장 포괄적인 것이다. 인간에게 오직 몸만 있다고 생각하고, 우주 안에는 물질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얄팍하고 무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생각, 즉 정신적인 방면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성경의 계시에 의하면, 객관적인 존재에 세 가지 층, 곧 물질적인 영역과 정신적인 영역,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세 종류의 지각이 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존재를 알려면, 우리는 반드시 이렇게 삼중 이해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물질적인 영역만 안다면 얄팍한 것이다. 계속 나아가 정신적인 영역을 안다면 다소 진보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영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객관적인 존재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없는 것이다. “여호와, 곧 하늘들을 펼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시며 사람 안에 영(靈)을 지으시는 분께서 이렇게 선포하신다.”(슥 12:1)

하나님은 물질적인 영역과 정신적인 영역을 알고,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의 하나님을 아는 이러한 세 종류의 기본적인 앎을 위해서 사람을 세 부분으로 된 존재로 만드셨다. 사람 속에 있는 영은 특별히 하나님을 아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우주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반드시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인간의 가장 깊고 높고 궁극적인 추구는 하나님에 대한 추구요 신성한 것들에 대한 추구이다. 우리에게 음식과 의복이 부족할 때,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한다. 음식과 의복에 대한 필요가 채워진 후, 지식이나 오락이나 문학이나 예술 등의 정신적인 누림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얻고 누린 후에도,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존재 안에 아직도 뭔가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공허함은 우리의 영에서 온다. 이 공허함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 곧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다. 그러므로 완전하고 온전하며 만족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것은 매우 얄팍하고 타락한 것이다. 더 높은 유형의 추구도 결코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얻고 누릴 때만이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참으로 만족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 ”(요한복음 4:13-14)

 

[“네가 어디 있느냐”,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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