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35호―복음 시리즈 6호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람이 이 땅에서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매 시대에 이러한 질문들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각 사람이 그러한 질문에 직면하여 답변해야만 한다. 만일 사람이 그 답변을 찾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매우 가련하고 공허할 것이다.
사람은 자연히 생겼는가
오래전부터 사람의 기원에 대해서 주로 두 종류의 해석이 있었다. 첫 번째 해석은 사람이 자연히 생겼다는 것인 데 반해, 두 번째 해석은 사람의 기원에 대한 지혜로운 설계와 창조를 믿는다. 사람이 원숭이에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은 첫째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는 이들은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숭이는 어떻게 생겼는가? 그들은 “원숭이는 다른 포유동물에서 진화되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포유동물은 어떻게 생겼는가? “포유동물은 파충류에서 진화되었다.”라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파충류는 어디서 왔는가? “양서류에서 왔다.” 그러면 양서류는? “양서류는 물고기에서 진화했다.” 물고기는? “단백질과 핵산 같은 저급한 물질에서부터 왔다.” 그러면 단백질과 핵산은? “그것들은 무생물에서 왔다.” 그러면 무생물은? “원자와 분자에서 왔다.” 원자와 분자는? “그것들은 자연히 생겼다.” 결국 그들은 사람이 자연히 생겼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기원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이다. 사실상 이러한 종류의 해석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사람이 자연히 생겼다는 해석은 무생물이나 유기적인 것이 둘 다 우연한 충돌과 진화를 통해 생겼다고 보기 때문에, 인생이 무의미하고 사람의 존재에 목적이 없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어떤 것이 그저 우연히 충돌해서 먼지나 바위가 되고, 또 어떤 것은 고양이와 개가 되고, 또 다른 것들은 원숭이가 되고, 심지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의하면, 인간 존재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원숭이와 개와 물고기와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고, 심지어 먼지와 돌과도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이러한 다른 유기체와 다를 바가 없고, 심지어 무생물과도 다를 바가 없으므로, 사람이 살아야 할 목적이 없다. 모든 것이 다만 물질일 뿐이고, 사람은 존재해야 할 의미나 목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해석은 사실상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러나 우리의 체험과 깊은 속의 느낌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삶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각 사람의 깊은 속에는 목적의식, 곧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뚜렷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 사실상 그러한 의식은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 두신 것으로, 그것은 사람이 영원한 분이신 하나님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전도서 3장 11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아름답게 만드셨고, 또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을 두셨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영원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해 아래 그 무엇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는, 대대로 작용하는 신성하게 심어진 일종의 목적 있는 감각’(확대역 성경)을 가리킨다. 비록 인간은 때때로 그들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를 발견한 적이 없으면서도 어떤 목적을 위해 산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자연히 생겼다고 말하는 진화론은 목적에 대한 우리 속 깊은 곳에 있는 느낌과 모순되고,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뚜렷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느끼는 우리의 내적 느낌과 일치되지 않는다.
또한 진화론은 사람이 진화를 통해 자연히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사실상 자기 스스로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일종의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이것은 탁자 위에 있는 두 개의 꽃병과 같다. A 꽃병이 B 꽃병에게 이렇게 묻는다. “넌 어떻게 생겨났니?” B 꽃병이 “나는 자연히 생겼어.”라고 대답한다. 그러고 나서 B 꽃병이 A 꽃병에게 묻는다. “넌 어떻게 생겨났니?” A 꽃병이 “나도 자연히 생겨났어.”라고 대답한다. 그러한 대답은 불가지론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꽃병은 왜 자신들이 존재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탁자 위에 있는지 정말 스스로는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상 왜 이 꽃병이 존재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이꽃병을 디자인하고 만든 사람에게 묻는 것이 가장 좋다. 이 꽃병을 디자인하고 만든 사람은 이 꽃병을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줄 수 있다. 그의 의도는 이 꽃병에 꽃을 꽂는 것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여기 이 땅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기는 불가능하다. 만약 당신이 나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나 스스로는 답이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당신도 답이 없을 것이다. 설령 당신에게 답이 있다 할지라도, 그 답은 아무것도 아닌 공론이나 공상일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 분명한 이해를 가지려면, 우리는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께 물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곧 우주와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이다. 성경은 사람의 기원을 분명히 계시한다. 사람의 기원은 하나님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요한계시록 4장 11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주님, 우리의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존재하며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가 창조되고 존재하는 것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서이다. 온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어쩌다가 생긴 것이 아니다. 우주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려는 창조주의 지혜로운 설계와 창조의 결과로 나왔다. 우주가 이렇게 창조되었고, 사람은 더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은 매우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사람 안으로 분배하시려는 목적을 가지시고,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계시한다. 꽃병이 꽃을 꽂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장갑이 손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장갑의 목적, 즉 그 존재의 의미는 손이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목적 곧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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