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의 광대함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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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의 광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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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46호

좋은 땅의 광대함

이미 우리는 가나안 좋은 땅이 그리스도에 관한 완전한 예표, 즉 모든 것을 포함한 예표라는 것을 보았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예표들이 있다. 유월절 어린양이 그리스도의 예표요, 만나도 또한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많은 기구와 용품과 다양한 제물이 있는 성막 역시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그러나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는 예표는 오직 가나안 땅뿐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요, 모든 것 가운데 계시며,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라고 말한다(엡 1:23, 4:10, 골 1:15~20).

이 땅의 좋은 점-광대함

구약성경에서 이 땅은 여러 차례 ‘좋은 땅’이라 불렸다. 이 땅은 참으로 주목할 만하다. “내가 너를 ‘좋은 땅’으로 인도하리라”. 주님께서 어떤 것이 좋다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좋은 땅 … 좋은 땅 … 좋은 땅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땅은 참으로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주님은 그것을 좋은 땅이라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좋다는 말인가? 출애굽기 3장 8절에서는 “내가 … 그들을 좋고 넓은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라고 말한다. 이 땅은 광대하다. 이 땅은 좋고 광대한 땅이다. 이 땅은 무엇보다도 광대하다는 점에서 좋다.

광대함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의 광대함을 묘사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넓이가 얼마인지 말할 수 있는가? 바꿔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크신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우리들 각자에게는 어떤 분량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분량은 어떠한가?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장에서 그리스도의 분량이 어떠한지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리스도의 분량은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이다. 우리는 너비가 얼마나 넓은지, 길이가 얼마나 긴지, 또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말할 수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저는 모릅니다. 그것은 무한합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너비는 우주의 너비이다. 그리스도가 온 우주의 너비요, 길이요, 높이요, 깊이이시다. 우주에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가 곧 그리스도의 한계일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크기를 결코 측량할 수 없다. 이것이 이 땅이 좋은 첫째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광대함을 적용함

이제 이것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분량을 적용할 수 있는가?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적용할 수 있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어떤 형제가 내게 와서 “형제님, 제 아내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 문제가 더욱더 악화될까 봐 두렵습니다. 지금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그러나 어떤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저에게 너무나 벅찰 것입니다. 저는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저를 견딜 수 없게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자매에게 말한 것과 똑같이 답변했다. “형제님, 지난 수년 동안 어떻게 지낼 수 있었습니까?” 그는 “오, 그것은 오직 주님 때문이었죠!”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형제님, 주님의 한계가 그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형제님이 그리스도를 더 많이 누리고 싶고 더 크신 그리스도를 누리고 싶다면, 더 나쁜 상태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오, 그게 바로 제가 두려워하는 점입니다. 지금 이 상태도 충분히 나쁩니다. 저는 바로 지금 주님께 이 상태를 멈추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만일 이것으로 족하다면 형제님은 그리스도를 이 정도까지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형제님이 그리스도를 더욱더 많이 체험하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더 나쁜 상황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체험에 의해’ 그리스도의 넓이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의 체험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광대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분의 광대함은 무한하다. 그리스도는 무한한 분이시다.

우리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차이

어느 날 한 형제가 내게 와서, “우리의 인내와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의 차이점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의 인내는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인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 질문은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형제님, 제가 사람을 사랑할 때 이것이 저의 사랑인지 그리스도의 사랑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깊이 생각한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면 무한할 것이고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당신에게서 나온 사랑이라면 틀림없이 끝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그를 사랑할 것이고 내일도 그를 사랑할 것이며, 이런 일에서도 그를 사랑할 것이고 저런 일에서도 그를 사랑할 것입니다. 하루를 사랑하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를 사랑할 것입니다. 이번 달에도 사랑하고, 금년에도, 내년에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신의 사랑은 고갈될 것입니다.” 인간의 선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선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인내는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내로 참는다면 잘못된 대우를 받을수록 더 참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무한함에 있어서, 그분의 광대함에 있어서 좋으시다. 그분께 속한 모든 것에는 한계가 없고 변함이 없다.

나는 아주 큰 손수건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 가로 세로가 각각 삼십 센티미터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손수건은 오직 그만큼만 덮을 수 있다. 결코 방 전체를 다 덮을 수는 없다. 그것은 충분히 크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한계가 없는 천과 같으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긴지 알 수 없다. 그분은 한계가 없으시다. 무엇이든지 다 덮을 수 있으시다. 그 문제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리스도는 그것을 덮으실 수 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무한하심에 있어서 좋으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에 있어서 좋으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체험하고 누릴 수 있는 그러한 광대한 땅이시다.

   [위트니스 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2장,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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