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
네 명의 재혼한 여인들과 한 처녀 유대인의 관례에 따르면, 족보를 기록하는 사람은 결코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단지 남자의 이름만을 기록했다. 그러나 마태복음 1장의 이 간단한 족보 안에 다섯 명의 여인들이 언급되었다. 이 다섯 여인들은 네 손가락들처럼 넷이 한 무리이며 다른 하나는 홀로 있다. 이 다섯 여인들 중에서 넷은 재혼했으며, 넷 중 하나는 창녀였다. 이 신성한 기록은 사라나 리브가 같은 좋은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고 나쁜 사람들을 언급한 것 같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 1:6). 이 기록은 심지어 그녀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단지 그녀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는가를 상기시키기 위해 그녀의 역사만을 말해 준다.
당신은 다말의 역사를 아는가? 그녀는 유다의 며느리였다. 유다는 자기 며느리에게서 쌍둥이를 낳았다(창 38:24-30). 얼마나 형편없는가! 두 번째 여인의 이름은 라합으로서 여리고의 창녀이며, 세 번째는 룻으로서 모압인이었다. 모압인은 10대까지 주님의 회중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신 23:3). 모압인은 롯이 자기 딸에게서 난 모압의 후예들이다. 네 번째 여인은 밧세바로서 다윗이 살해한 우리야라는 이름의 가나안인의 아내였다. 다윗은 그녀를 자기 아내로 취하였으며 그녀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 왜 이 간단한 기록에서 이 모든 여인들을 언급하는가? 이는 그들이 우리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이 여인들보다 매우 깨끗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 자신의 근원을 추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할아버지, 당신의 아버지, 당신이 어떠한 방법으로 누구에게서 태어났는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더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혈통에 포함되었다! 주님을 찬양하자! 그분은 참으로 죄인들의 구주이시다. 넷이라는 수는 온 인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상징한다. 인간은 더러우며 누구도 깨끗하지 않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하자.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혈통의 일부이다. 만일 성경 안에 그리스도에 대한 전기들이 없고 우리가 그분의 전기를 썼다면 우리는 감히 이러한 방법으로 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불순한 할머니들을 숨겼을 것이며 사라와 리브가 같은 좋은 할머니들의 이름만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사라와 리브가 또는 모든 좋은 사람들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이 불순한 사람들은 포함했다. 우리는 순수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혈통은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다. 사실상 좋은 사람들보다 나쁜 사람들을 더 많이 포함한다.
네 명의 재혼한 여인들 외에 한 처녀가 두드러지는데 곧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좋고 순수하고 깨끗했다. 이것은 이 책에 언급된 모든 사람의 혈통이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죄인임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깨끗하지 않다.
다말과 장자권
우리가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사람은 다말이다. 다말은 자기 시아버지와의 근친상간을 통해 잉태했다(창 38:6-27). 도덕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통탄할 만한 것이며 윤리적으로 말하자면 끔찍한 것이다. 아무도 이것을 의롭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창세기를 연구해 왔지만 38장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아프다. 어떤 의미에서 다말은 결코 선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의로웠다. 잘못은 그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보다 더 의로웠다고 인정한 시아버지 유다 쪽에 있었다(창 38:26). 당신은 다말의 행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근친상간은 언제나 쌍방이 다 연루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다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의로웠으며 장자권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말의 시대에 장자권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창 38:6-8). 장자권은 두 배의 몫의 땅과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포함했다. 두 배의 몫의 땅은 그리스도에 대한 두 배의 누림을 말한다. 땅은 그리스도이며, 두 배의 몫의 땅은 그리스도에 대한 평상적이고 일반적인 누림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하고 비범한 누림이다.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은 모두 그리스도에 관계된 것이다. 아브라함 후의 세대에 있어서 장자권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유업으로 받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이었을 때 그리스도 밖에 있었음을 본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장자권 안으로 이끌어졌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넣어졌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몫이 되었고, 심지어 그분은 우리의 두 배의 몫이 될 것이다.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우리는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갖는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좋은 땅이요, 우리의 제사장 직분이며, 우리의 왕의 직분이다.
이제 우리는 왜 다말이 장자권 갖기를 갈망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만일 자기가 끊긴다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끝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약속은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택한 백성들에게 몫이 되는 그분 자신에 대한 약속이었다. 다말은 이 축복을 그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말은 유다의 맏아들의 아내였다. 이 아들은 장자의 권리를 상속받아야 했다. 그러나 다말의 남편은 주님 보시기에 악했으므로 주님은 그의 생명을 취하셨다(창 38:7). 주님은 또한 유다의 둘째 아들도 죽이셨다(창 38:8-10). 고대의 규례에 따르면, 유다는 장자권을 물려받을 한 아들을 낳기 위해 자기의 다음 아들이 다말과 결혼하도록 안배해야 했다. 그러나 유다는 그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유다는 다말을 속인 것이다(창 38:11-14). 그러나 다말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장자권을 얻기 위하여 적절하지 않은 수단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 수단이 적절하든 적절하지 않든 다말은 장자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장자권을 갖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우리는 최선의 길처럼 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얻기 원한다면 방법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적이 되지 말고 규례들과 규칙들을 지키지 말라. 그리스도를 얻으라! 당신은 그리스도를 얻어야 한다. 어떤 수단으로라도 장자권을 얻으라. 다말은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장자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성경의 신성한 기록 안에서 다말의 이름은 나쁜 이름이 아니다. 룻기 4장 12절은 이 이름이 신성함을 가리킨다.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안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이것의 중요한 의미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의하고 그분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참으로 그분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이든 바른길이라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마태복음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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