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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46 믿는 이들의 휴거(1)

 

휴거에 대한 견해에는 주로 세 학파들 곧 환난 전 휴거, 환난 후 휴거, 부분 휴거설이 있다. 부분 휴거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기는 이들이 대다수의 믿는 이들보다 일찍 휴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 각 학파에는 성경을 아주 잘 아는 매우 영적인 성도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의견 충돌로 인하여 휴거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여러 해 동안 휴거에 관해 연구하고 관찰하고 숙고한 결과로, 순수한 성경 말씀에 따라 휴거에 대한 분명하고 순전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제시하려고 한다.

Ⅰ. 이기는 이들의 휴거

 성경에서 우리는 휴거의 두 방면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곧 이기는 이들의 휴거와 대다수 성도들의 휴거이다. 휴거에 두 방면이 있다는 것은 오직 두 번만의 휴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기는 이들의 휴거에만도 최소한 세 가지 범주가 있다. 예를 들어, 첫 열매의 휴거는 사내아이의 휴거와 다르다. 사내아이(계 12:5)는 부활한 죽은 이기는 이들로 구성되며, 첫 열매(계 14:1-5)는 살아 있는 이기는 이들로서 죽음을 통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해를 옷으로 입은 여인처럼 사내아이도 상징이다. 12장 11절은 사내아이의 한 부분인 이기는 이들이 죽기까지 충성했으며, 어린양의 피와 그들의 증언하는 말과 죽기까지 자신들의 혼생명을 사랑하지 아니하므로 원수를 이겼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내아이에 포함된 모든 이들이 죽기까지 충성스러웠음을 가리킨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순교당했다. 따라서 사내아이는 모든 죽은 이기는 이들을 포함하며, 살아 있는 이기는 이들인 첫 열매와는 다르다. 사내아이와 첫 열매외에도 15장에는 또 다른 무리의 이기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곧 적그리스도와 그의 표시 곧 그의 이름의 숫자와 그의 형상을 이긴 후기 이기는 이들로서, 그들은 휴거되어 유리 바다 위에 서서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기는 이들에 관해서도 최소한 서로 다른 세 휴거가 있다. 이 외에도 11장에는 두 증인의 개인적인 휴거가 있다.

   이기는 이들의 휴거는 휴거의 첫 부류이며, 대다수의 성도들의 휴거는 요한계시록에서 추수로(14:15) 생각되는 두 번째 부류이다. 레위기 23장 10절에서 우리는 땅에서 익은 곡식들을 휴거의 예표로 볼 수 있다. 어떤 곡식들은 일찍 익고 어떤 것들은 늦게 익는다. 먼저 익은 것들은 첫 열매로 여겨진다. 구약 시대에 첫 열매는 언제나 곡간으로 가져가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갔다(레 23:11). 첫 열매는 하나님의 누림과 만족을 위해 밭에서부터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갔다. 땅에서 완전히 익는 그때가 바로 추수 때이다. 추수 후에는 수확하여 곡간으로 가져간다. 이것은 예표이다. 수확물은 하나님의 백성이며(고전 3:9), 수확물의 처음 익은 것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직접 가져가게 될 첫 열매이다. 이런 후에 햇빛이 더 밝게 비치게 되고 아직까지 푸른 곡식들은 익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곡식이 익었을 때 대다수의 성도들이 추수되어 공중으로 들려 올려질 것이다. 공중은 곡간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농장에는 곡간이 농부의 집과 농장 밭 사이에 있다. 추수된 것들은 곡간에 들이지만 첫 열매는 농부의 시식을 위하여 집으로 가져간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께서 땅에 씨를 뿌리시기 위하여 오셨음을 계시한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하나님의 경작지”(9절)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우리는 첫 열매와 추수를 본다. 이것이 휴거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을 제공한다.

A. 휴거가 필요한 이유

  1. 대환난이 오기 때문에

 우선 이기는 이들의 휴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마태복음 24장 21절은 대환난이 올 것을 계시한다. “그날들이 단축되지 않았다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지만, 선택된 사람들을 위하여 그날들이 단축될 것입니다.”(마 24:22) 대환난은 너무나 극렬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구원받기가 어려우므로 그날들이 단축되어야 한다.

  1.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덫이 임하기 때문에

 휴거의 또 다른 필요는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덫이 임하기 때문이다(눅 21:34-35). 그것은 마치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이 사탄은 우리를 덫으로 잡기 위해 그의 그물을 던질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서 주님은 35절의 덫과 관계된 세 가지 것들을 언급하신다. “여러분은 스스로 조심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여러분의 마음이 억눌려, 그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여러분에게 닥칠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주님은 방탕함(먹는 것)과 술 취함(마시는 것)과 생활의 염려를 언급하신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이들이 이 세 가지에 의해서 점령되었다. 예를 들어, 산업은 전적으로 생활의 염려를 위해 있다. 금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대학이 산업을 위해 있고, 산업은 돈을 위해 있고, 돈은 생활을 위해 있다. 오늘날 이 지구상의 수십 억의 사람들의 유일한 관심은 생활에 대한 염려이다. 그들에게 관계된 모든 것들-교육, 산업, 정치, 전쟁-이 생활에 대한 염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이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생활에 대한 염려가 악한 덫의 세 가지 주요 요소이다. 그 그물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덫으로 잡기 위해 사탄에게 사용되고 있다. 누가복음의 이 구절들에서 주 예수님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이들이 덫에 걸리게 될 때가 오리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칠십 년 이상 살아오면서 육십 년 가까이 세계정세를 관찰해 보았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안다. 나는 인간의 역사를 연구해 보았고, 신문을 읽어 보았고, 세계정세를 관찰해 보았다. 내가 발견한 것은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사람들은 그들의 육신의 생활 이외는 아무것도 주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지구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창조하지 않으셨다. 아니다. 그분의 창조는 아름답고 많은 훌륭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러한 것들 중에 어떤 것에 의하여 덫에 걸린다면 우리는 그것들에 붙잡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위하여 적합한 거처를 갖는 것은 필요하고 합당한 것이지만 그것에 의해 덫에 걸리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비록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생활의 염려로 인해 덫에 걸릴 심각한 위험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상적인 인간 생활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락한 사람이기 때문에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 마태복음 24장 40절은 밭에 있는 두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은 두 사람이 자거나 교통하고 있거나 전적으로 주님을 위해 살기 때문에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41절은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고대에 여자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밀을 가는 것이었다. 또 다른 극단의 예는 돈을 벌고 쓰는 것에만 주의하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런 극단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내가 도적같이 올 것이다. 아마 나는 네가 돈 버는 데 열중하고 있을 때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생활하기 위해서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그것에 의해서 덫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지만 결코 그것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균형 잡히기를 배우라. 비록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를 모른다해도 우리는 이 땅에 있는 한 주 예수님의 합당한 간증이 되도록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최선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균형 잡힌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휴거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지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장래 그분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지려면 오늘 그분의 임재 안에 있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요한 계시록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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