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66호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는 달콤한 단어이다. 그런데 은혜란 무엇인가? 인간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은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에서 비롯된 어떤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누구에게 주는 선물은 그를 향한 사랑의 표시이다. 은혜는 사랑에서 비롯된 어떤 것이다. 누가 당신을 사랑한 나머지 좋은 시계 하나를 준다면 그것은 은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좋은 시계를 할인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을 말해 준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은혜는 아무것도 청구하지 않고 사랑의 표현으로서 준 어떤 것이다. 이제 이 정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신 것에 적용해 보자.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그리스도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는 그리스도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으므로 그분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이나 구속 또는 천당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이 은혜라고 믿는다. 또 어떤 이들은 좋은 저택이나 멋있는 자동차 또는 훌륭한 아내나 좋은 남편이나 말 잘 듣는 자녀들이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많은 좋은 것들을 그들에게 은혜로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은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실재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된 은혜는 신성한 인격이심
그러면 하나님은 실재 안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단지 구원이나 구속 또는 천당만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한 신성한 인격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인격을 주셨는데, 이 인격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지 수년이 되었어도,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바로 그 은혜이시라는 것은 결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좋은 직업을 얻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그분께 감사한다. 어떤 이들은 학위를 수여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그분께 감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 본 적이 있는가? “오, 하나님, 저에게 그리스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어떠한 은혜인지요!” 우리가 이렇게 말해 본 적이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루에 몇 번이라도 이렇게 말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오, 그리스도를 내게 주셨다! 어떠한 은혜인가! 어떠한 은혜인가!”
베드로는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라고 말한다(벧전 5:12). 이것은 일부 사람들이 은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참된 은혜가 아님을 의미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된 은혜이시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가 은혜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참된’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참된 은혜이시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많은 것들을 주셨다. 그분은 하늘, 땅, 햇빛, 빛, 공기, 먹을 것, 물 등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은혜로 여겨야 한다. 호흡하는 공기에 대해 우리는 값을 치르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은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이 배설물, 즉 똥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그 밖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한다. ‘배설물’이라는 말은 개들에게 던져 주는 찌꺼기를 말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은 밖에 던져져 개에게 먹히는 찌꺼기일 뿐이었다. 우리가 은혜로 여길지도 모르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쓰레기이다. 우주 안에 쓰레기로 여기지 않을 것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쓰레기가 아니시다.
은혜 위에 은혜
신약에 계시된 바로 그 은혜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신성한 인격이다.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이것이다. “태초에 말씀께서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요 1:1) “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14절)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에서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였다.”(16절) 요한은 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 교리와 가르침이 충만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육체가 되신 말씀은 은혜가 충만했다. 은혜는 바로 예수님의 살아 있는 인격이다. 예수님은 외관상으로 매우 단순한 한 작은 사람이셨다. 사실 예수님은 간단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태초에 말씀이셨고(1절),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셨으며(3절), 육체가 되시어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분이시다(14절). 더욱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이 놀라운 인격은 은혜가 충만하시다.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에서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이다(16절). 그러므로 은혜는 우리가 누리도록 우리의 몫이 되시기 위해 육체가 되신 삼일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아들 그리스도-성령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은 더 나아가 어떻게 이 놀라운 인격이 그분 자신을 여러 사람들에게 제시하셨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물로서 제시하셨고(요 4:10, 14, 7:37-39), 음식으로서 제시하셨다(6:26-69). 그분은 자신이 생명수이며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분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마시고 자신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돌아오셔서 그들 안으로 숨을 내쉬셨다(20:22). 요한복음은 이 놀라운 인격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용하신지를 계시해 준다. 우리는 그분을 마실 수 있고, 먹을 수 있으며, 호흡해 들일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이다. 우리는 결코 물질적인 것들을 은혜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참된 은혜는 바로 우리의 누림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Triune God)이다.
생명의 은혜
베드로전서 3장 7절은 “아내는 더 약한, 여성의 그릇으로서, 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이니, 아내를 존중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자매들을 더 약한 그릇이라고 말하지만, 이 더 약한 그릇들은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들이다.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이라는 용어는 지극히 귀하다. 은혜는 생명에 속한 어떤 것인데, 우리는 이 은혜를 상속받는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생명은,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 자신이다(요 11:25, 14:6). 생명은 우리 안으로 분배되신 삼일 하나님(Triune God)이다(롬 8:9-11, 엡 3:16-19). 그러면 생명의 은혜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위해 우리 안에 오신, 생명이신 삼일 하나님이다. 이로써 우리는 은혜가 어떤 사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 은혜는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우리의 생명이 되시려고 우리 안에 오신 신성한 인격이다. 이것이 생명의 은혜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은혜를 상속받았다. 생명의 은혜는 우리의 유업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는 사람들이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은 또한 우리가 그릇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들이며, 동시에 생명의 은혜를 담는 그릇들이다. 우리는 생명의 은혜를 상속받아야 하고 생명의 은혜를 담아야 한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그분 자신을 생명으로 우리 안에 분배하셨다. 이것이 생명의 은혜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73―1974년 1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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