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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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116호

눈물(1)

 

눈물의 중요성

당신은 눈물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영적인 체험이 매우 깊은 한 사람은 “만일 당신의 사랑을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에게 준다면, 이것은 당신의 돈주머니를 소매치기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돈주머니를 소매치기에게 맡기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 마찬가지로 당신이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을 준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눈물은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그의 사람됨의 특성을 잃어버린 것이며,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그의 용기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고상하며, 많은 사람과 비교하여 초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마른 눈은 우리에게 그의 내면에 건조하고 딱딱한 마음이 있으며, 그의 마음은 반항할 수 있으며 감정이 없이 마치 목석(木石)같음을 알려 준다. 많은 때 눈물 흘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의 심정을 말해 준다. 눈물처럼 사람의 마음 상태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눈물이 마음의 출구라고 말하겠다. 당신 속에 압력이 심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눈에서 한두 방울 눈물이 떨어지기만 하면, 기운이 나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우리 주님 또한 눈물을 흘리셨다. 성경은 비록 주님의 기쁨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분의 웃음은 기록하지 않고 그분의 눈물은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서는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일이 여러 번이었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분께 항상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이사야서 53장에서도 그분은 자주 근심을 겪으셨으며,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눈물의 씻는 기능

눈물은 물질 세계에서 씻음의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눈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물을 더 분명히 볼 수 있다. 당신에게 눈물이 없다면, 영적인 눈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번은 팬턴 선생이 한 젊은 부부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당신들은 매우 좋지만, 아직 한 가지가 부족한데 이것을 하면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바로 주님께서 빨리 오시도록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에 그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하오. 오늘 저녁에 우리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편은 충심으로 기도한 후, 그의 아내도 기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가정은 아주 좋아요. 부부 사이가 좋고 즐거우며, 경제적인 면도 문제가 없고, 우리 뜻대로 집도 아주 편안하고 아름다운데 내가 왜 주님께서 빨리 오시기를 구해야 하나요? 천천히 오시기를 바라요.” 이렇게 칠 개월이 지났을 때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죽었다. 후에 그녀가 팬턴 선생을 만나자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칠 개월 후부터 저는 매일 주님께서 빨리 오시기를 구했습니다.” 눈물이 그녀의 눈을 씻어서 그녀로 하여금 분명히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당신이 생리학(生理學)을 안다면, 눈은 마치 유리와 같아서 반드시 항상 닦고 씻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눈꺼풀이 붙었다 떨어질 때마다 눈물이 눈을 씻기 위해 나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 그의 영적인 눈을 씻은 적이 없을 것이다. 또한 분명하게 볼 수 없다. 이제까지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없고, 뜻에 맞지 않은 일을 만나 본 적이 없고, 아직까지 상심해 본 적이 없고, 고뇌해 본 적이 없으며 영 안에서 핍박받는 일을 만나 보지 않았다면, 그들은 많은 일들에 대해 사물을 분명히 볼 수 없고 또한 알지도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눈물

욥기 16장 20절에서는 “내 친구들 나를 비웃으니 내 눈은 하나님 향해 눈물 쏟아 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욥이 사탄의 공격을 받고 욥의 세 친구가 그를 조롱한 후에 한 말이다. 형제여, 사람의 조롱과 압박을 받고서,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사람 앞에서 면박을 받은 적이 있는가? 손해와 억울한 누명을 받은 적이 있는가? 당신은 이러한 일들을 만날 때 욥처럼 그렇게 운 적이 있는가? 물론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은 그 사람이 연약하다는 표시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 우는 것은 합당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복이 있다고 나 자신은 말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이제껏 하나님 앞에서 울어 보지 못한 사람은 교통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과 친근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으며, 무거운 짐을 여호와께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알 수 없다. 예전에 나의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모든 길이 막혀 버리고, 곳곳에서 핍박을 받으며, 사람들이 당신이 옳지 않다고 말하며, 환경이 당신을 힘들게 할 때에 당신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 이것이 당신의 유일한 출로(出路)이며 오직 이것만이 당신이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일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성도가 경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매일 경건하게 지내며 충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이런 일들은 당신에게 반드시 임할 것이며, 또한 눈물도 반드시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편 6편 6절 말씀을 보자. “저는 …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눈물로 잠자리를 녹입니다.” 다윗은 이때 환난 중에 있었고, 몸 또한 강하지 않았다. 그는 밤마다 눈물을 흘렸으며 심지어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잠자리를 녹이기까지 했다. 웃을 줄만 알고 울 줄 모르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는 아주 얕은 사람이라고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 매일 희희낙락한다는 것은 그의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왜냐하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는 사람 중에 하나님께 발견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눈물은 그의 속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며, 또한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것은 우리의 공개적인 눈물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눈물도 아니며, 도리어 우리의 비밀한 눈물이며, 그분께 보인 눈물이다. ‘하나님을 향한 눈물’, ‘밤에 흘리는 눈물’이 바로 보배로운 눈물이다. 시편은 다윗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린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죄악이 있거나, 환난을 당할 때마다, 매번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다윗이 하나님께 그러한 깊이와 체험을 하는 데까지 인도함 받은 까닭은 모두 그의 눈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다윗을 다윗 되게 한 것은 바로 그의 눈물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사울은 단지 성질과 노기를 낼 줄만 알았지 눈물을 흘릴 줄 몰랐다.

(워치만 니 전집 1집 19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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