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통(1)-소개의 말

새 예루살렘(5)―믿는 이들에게 새 예루살렘을 적용함
July 19, 2024
교회의 정통(2)-에베소 교회
September 16, 2024

생명의 흐름-128호 

교회의 정통(1)-소개의 말

성경: 요한계시록 1-3장

태초로 이끄는 요한의 글들 

요한이 쓴 글은 서신서이든 복음서이든 모두 맨 마지막에 놓여 있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모든 책 중에 마지막 책이다. 마태, 마가, 누가의 세 복음서는 주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행적을 쓴 것이고, 요한의 복음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요 3:13)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 요한의 서신서들은 영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란스럽게 할 때 쓰인 것으로서, 사람을 하늘로 이끌고 가서 하늘에 있는 모든 영원한 사실들이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 요한은 우리가 사람의 영역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요한이 쓴 글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곧 우리를 태초로 이끈다는 것이다. 요한의 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 태초에 계신 분이라고 말하고, 요한의 서신서는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며, 요한계시록은 우리를 장차 올 영원한 세계로 이끌고 간다. 그의 복음서는 육체를 입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실 때 사람들은 그분을 잘 알지 못하여 그저 나사렛 사람 예수로 알았지만, 요한은 우리에게 육체를 입고 계신 이 예수님께서 바로 태초에 계신 그분이심을 말해 준다. 이것이 장면 뒤에 있는 사실이다. 요한의 서신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분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분의 직분은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알지 못했고 그리스도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요한의 서신서는 특별히 이 두 가지를 제시하여 우리를 장면 뒤에 있는 사실인 태초로 이끌고 간다.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에 세상은 대단히 혼란스러웠으며, 로마의 가이사가 가장 악할 때였다. 그러므로 요한은 장차 다가올 장면 뒤에 있는 상태로 우리를 이끌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보시는 관점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이 세상의 상태뿐만 아니라 교회의 상태도 나타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교회의 외적인 상태가 가장 혼란스러울 때, 도대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주님께서 유죄판결 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주님께서 정하신 교회의 길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 교회는 외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많은 다른 표현이 있어 왔다. 그렇다면 어떤 길과 어떤 상태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인가? 이것이 바로 요한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장면 뒤의 갈망이다.

 두 부류의 일곱 서신서

성경 안에는 두 부류의 일곱 서신서가 있다. 첫 번째 부류의 일곱 서신서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쓰신 것들인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이다. 하나님은 또한 요한을 통해 두 번째 부류의 일곱 서신서를 쓰셨다. 앞의 일곱 서신서는 교회가 정상적일 때 어떠한지에 관해 말한 것이고, 뒤의 일곱 서신서는 교회가 비정상적일 때 어떠한지에 관해 말한 것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이 세 복음서는 정상적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도록 한다. 그러나 요한의 복음서는 사람들이 불분명해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므로 진리와 은혜를 많이 언급한다. 요한의 서신서도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므로 빛과 사랑을 많이 언급한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비정상적인 상태에 대처하신 내용이다. 앞의 바울의 일곱 서신서는 교회의 정상적인 행함에 대해 다룬 내용이다. 이제 교회가 정상적이지 않게 되었으므로,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뒤의 일곱 서신을 쓴 것이다. 앞의 일곱 서신은 교회가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를 말한 것이고, 뒤의 일곱 서신은 교회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참으로 주님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을 읽어 보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는데,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려 준다. 만일 요한계시록에서 그 길을 찾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앞의 일곱 서신서만을 보아서는 마지막 시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쓴 자신의 서신서에서 적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났으니 주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고 말했다(요일 2:18, 4:3, 2:24). 일반적으로는 교회가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를 한 시대(교회 시대)로 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적어도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은 나뉘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외형은 황량하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보지 못했다면 요한계시록을 읽을 필요가 없다. 앞의 일곱 서신서는 정상적인 것을 다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땅 위의 혼란은 영적인 실재에 영향을 줄 수 없다. 하나님의 영적인 실재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교회의 외형적인 모습은 혼란스러워졌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다. 1914년에 개신교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주 작은 그룹들 외에 어느 정도의 규모로 조직된 교파만도 천오백여 개가 된다. 이 많은 교파들도 다 각각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다. 요한과 바울과 베드로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이러한 일들이 이미 시작되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났는데”(딤후 1:15)라고 말했다. 거기에는 에베소 교회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한 가지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주님을 따르고 섬겨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렇게 교회의 외형이 황량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추구한다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우리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알려 줄 것이다.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는 일곱 교회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예언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이 책이 예언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당시 아시아에는 교회가 일곱 곳에만 있었던 것이 아닌데, 요한은 왜 일곱 교회만 언급했는가? 그것은 그가 밧모섬에서 본 것이 오직 일곱 교회뿐이었고, 이 일곱 교회가 나머지 모든 교회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밀접하게 연관된 특성을 지닌 이 일곱 교회를 선택하셔서 이 일곱 교회를 통해 예언하신 것이다. 이 일곱 서신은 모두 주님으로 시작하여 이기는 이를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이기는 이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이기는 이인가? 비범하고 특별한 사람인가? 성경에서 이기는 이란 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모두가 비정상적일 때에 비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 이기는 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수준 아래에 있다. 이기는 이는 이 수준을 뛰어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수준에 있는 사람이다. 오늘 하나님은 애초의 정상적인 표준에 따라 일어나 행하도록 이기는 이를 부르고 계신다. 오늘날 사람은 타락하고 실패하여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있지만, 이기는 이는 하나님의 뜻 안으로 새롭게 회복되고 있다.

[워치만 니, 교회의 정통, 한국복음서원]

연락처: 707—440—3412

이메일: HighPeakTruth12@gmail.com
홈페이지: HighPeakTruth.org 에서 지난 메시지들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youtube.com/@highpeaktruth/videos

본 내용의 PDF 형식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려면 클릭하세요.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