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132호
교회의 정통(5)-버가모 교회(2)
성경: 계 2:12-17
니골라당의 가르침
“이와 같이 너에게 또한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계 2:15) ‘이와 같이’라는 말은 특별히 앞 문장에 이어 말하는 것이다. 주님은 발람의 가르침을 반대하신다. 이와 같이 주님은 니골라당의 가르침도 반대하신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교회가 본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정하셨다. 마태복음 20장 25절부터 28절까지를 보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까이 부르셔서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권세를 부리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이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크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종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 자기 생명을 속전으로 주려고 온 것입니다.’ ”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에는 통치자나 고관 같은 계급이 허용되지 않는다. 주님은 “누구든지 크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종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크다는 것은 지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으로 정해진다. 마태복음 23장 8절부터 11절까지를 읽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교회의 기본 원칙은 이러하다. 즉, 모두가 형제이며 랍비나 선생이나 아버지는 없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 발람의 가르침이 생겨났고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나타났다. 우리는 또 신부 제도를 볼 수 있다. ‘-부’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많은 아버지 중에 가장 위에 있는 이가 교황이다. 그의 발에 입을 맞추는 사람은 누구든지 입으로 ‘나의 주님’이라고 외쳐야 한다. 또한 바티칸에는 고관들이 있으며, 많은 국가가 바티칸에 공사(公使)를 보낸다. 통치자들이 있고, 고관들이 있고,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고, 랍비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지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것을 교회 안으로 가져올 수 없다. 여러분이 여러분 옆에 앉은 비천한 사람을 형제라고 부를 수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형제자매 가운데 앉아 있으면서 그들의 형제자매가 될 수 없다면, 니골라당이 생긴 것이다. ‘니골라’라는 단어의 ‘-라’는 ‘평민’을 뜻할 뿐 아니라 전문가에 대조되는 ‘일반인’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의사들은 전문가이므로 의사 아닌 사람들을 일반인이라 부른다. 기술자와 기술자가 만나 동행하게 되면 피차가 전문가이지만, 그들이 기술자 아닌 사람을 만나면 그를 일반인으로 여긴다. 니골라는 일반인을 정복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전문가 그룹이 있는 반면, 나머지는 일반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분께서 ‘책망하시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의 상태는 각각 다르다. 에베소 교회에는 니골라당의 일이 있었으나, 버가모 교회에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있었다. 일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가르침으로 변하게 된다. 일이 나타나고 그 교리까지 전파되면, 이것은 그 일을 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 일에 기초한 이론을 산출하는 능력도 포함하게 된다.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일은 가르침보다 앞서 나타나는 것이며, 가르침이 나타났다면 이미 상황이 꽤 심각해진 것이다. 오늘날도 이와 같이 공개적인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있다. 어떻게 버가모에 이러한 가르침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우리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교회가 세상과 결혼했다. 로마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례를 받을 수 있었으며, 결국에는 교회에 믿지 않는 사람이 가득하게 되었다. 본래 교회 안에는 형제만 있고, 모든 형제는 다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잡다한 무리가 교회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편의상 한 무리의 사람을 선택하여 “여러분이 가서 영적인 일을 하십시오.”라고 말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에 가서 일을 하는 일반인이 될 수 있었다. 입교한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주 예수님을 몰랐다. 그러므로 주님을 아는 사람이 전문가가 되어 니골라당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교회와 세상이 결혼하여 낳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니골라당이 에베소에서는 하나의 일로 나타났으나, 버가모에서는 이미 가르침이 되어 버렸다. 현재의 주장은, 이후 교회의 일은 평신도가 아닌 전문가들의 일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영적이지 않으니 영적인 일은 전문가들이 하고 세상적인 사람들은 세상의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교리는, 교회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한 종류는 전문적으로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고 또 한 종류는 세상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일반적인 세상 사람이니 집회에 참석하면 되고 나머지 일은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고린도전서 14장의 집회의 원칙을 가져오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발람의 가르침이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이끌어 온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이 일을 가장 미워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나도 ‘사역’을 인정한다.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겸해서 했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전적으로 말씀 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오늘 말하는 형제의 지위는 사역에서의 지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한 지방에 있는 교회에서는 그 지방의 형제들이 집사와 장로가 된다. 또한 모든 형제자매가 영적인 일을 돌보며 모두가 제사장들이다. 장로는 그들을 대신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감독’할 뿐이다. 일꾼은 교회에서 다만 형제의 지위를 가질 뿐이다. 니골라당과 형제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간증하고 사도는 조금 더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이지 본질의 차이가 아니다. 본질은 같으나 분량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영적인 일을 특별한 계급이 하도록 바꾸어 버렸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세상에 속하게 되고 몇몇 영적인 사역자들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몇몇 특별한 영적인 사람을 선택하여 그들이 영적인 일을 돌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별도의 계급이 되어 모든 영적인 일을 도맡게 될 것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부 제도, 국교의 성직자 제도, 독립 교회의 목사 제도는 본질상 다 같은 것이다. 그들은 다 니골라당이다. 성경 안에는 오직 형제만 있을 뿐이다. 목자의 은사는 있으나 목사 제도는 없다. 목사 제도는 사람의 전통일 뿐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처음의 위치로 돌아오지 않는 한, 그들이 무엇을 하든 옳지 않다. 교회는 세상과 연합해서도 안 되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매우 쉽게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된다.
버가모의 이기는 이들
“귀가 있는 사람은 그 영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이에게는 내가 감추어진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것이다. 그 돌 위에는 받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적혀 있다.”(계 2:17) 이기는 이에게는 두 가지 약속이 주어진다. 하나는 감추어진 만나이고, 다른 하나는 흰 돌이다. 감추어진 만나와 광야의 만나는 다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은 매일 만나를 내리시어 그들을 먹이셨다. 얼마 후에 모세는 백성에게 금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가득 담아 언약궤 안에 두라고 말했다. 그것은 후대 사람들이 물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나를 주셨는지 알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 만나를 언약궤 안에 두라고 한 것이다(출 16:14-35). 그것은 후대 사람들이 만나가 어떤 것인지를 모를 때 언약궤 안에 있는 만나를 보여 주어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의 보상은 흰 돌인데, 그것은 이기는 이들의 새 이름이 적힌 돌이다.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새 이름은 주님 앞에서 그의 상태와 부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께서 적으신 흰 돌 위의 새 이름은 주님과 여러분만 안다. 이기는 이는 특별한 이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가 당연히 얻어야 할 이름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우리가 이기는 이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해 주시고, 감추어진 만나와 새 이름을 얻도록 해 주시기를 바란다. [워치만 니, 교회의 정통,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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