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통(7)-빌라델비아 교회(1)

교회의 정통(6)-사데 교회
February 15, 2025

[생명의 흐름 135호] 교회의 정통(7)-빌라델비아 교회(1)

성경: 계 3:7-13  

빌라델비아는 사도 시대의 정통으로 돌아간 교회이다.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처음의 위치로 전환한 것이다. 회복의 전환은 사데에서 시작하여 빌라델비아에서 완성되었다.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나왔는데, 로마 가톨릭교도 아니고 개신교도 아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다섯은 책망을 받았고 둘은 책망을 받지 않았다. 책망을 받지 않은 두 교회 중 하나가 서머나이고, 다른 하나가 빌라델비아이다. 오직 이 두 교회만 주님의 눈에 든 것이다. 매우 기이한 것은 주님께서 빌라델비아에게 하신 말씀이 서머나에게 하신 말씀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 두 교회에게만 면류관을 말씀하셨는데, 서머나에게는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줄 것이다.”(계 2:10하)라고 하셨고, 빌라델비아에게는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여라.”(계 3:11하)라고 하셨다. 이 두 교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곧 그들이 동일 선상-사도 시대의 교회의 정통적인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사데 교회도 하나의 회복이었지만 불완전하고 미흡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의 회복은 주님의 마음에 맞는 회복이다. 사데가 비록 매우 대단하게 나타났을지라도 그 회복은 완전하지 못했다. 회복의 길을 걸었지만 표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는 완전한 회복이다. 

형제 사랑의 교회 

   ‘빌라델비아’에서 ‘빌라’의 뜻은 ‘서로 사랑하다’이고 ‘델비아’의 뜻은 ‘형제’로서, 곧 ‘형제 사랑’을 의미한다. ‘형제 사랑’은 주님이 예언하신 것이다. 이제 주님은 완전히 회복되어 주님에게 칭찬받은 교회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을 읽은 사람은 “이것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역사상 어디에서 이것을 찾을 수 있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레위 지파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다 제사장이다. 베드로전서 2장과 요한계시록 1장과 5장은 주님의 피로 산 모든 사람이 다 제사장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니골라당은 특별히 제사장 직분을 만들어 냈다. 평신도는 직업을 가지고 세상의 일을 하고, 평신도 위에 있는 어떤 사람이 와서 제사장이 되어 영적인 일을 관리한다. 이것이 중간 계급이다. 유대인에게는 유대교가 있고, 니골라당은 행위에서 가르침으로 발전되었다. 천주교의 신부 계급을 볼 때, 영적인 일은 신부들이 하고 다른 이들은 세속적인 일을 한다. 안수는 그들의 일이며, 그들만이 축복을 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께 어떤 일을 여쭐 수 없고 신부에게 부탁하여 하나님께 여쭐 수밖에 없다. 사데에 와서 상태가 향상되었다. 신부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성직자 제도가 생겨 그것을 대신하게 되었다. 개신교에는 매우 엄격한 국교회와 산만한 사립 교회가 있다. 그러나 국교회나 사립 교회를 막론하고 그들 가운데 중간 계급이 존재한다. 전자는 성직자 제도이고, 후자는 목사 제도이다. 이러한 일종의 제사장 계급의 제도는 그 명칭을 신부라고 하든, 성직자라고 하든, 목사라고 하든 간에 다 주님께 거절당한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다 제사장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벧전 2:5, 9), 사람들은 왜 영적인 권위가 신부와 같은 한 무리의 중간 계급의 수중에만 있다고 말하는가? 피로 구속받은 사람은 다 제사장이다(계 1:5-6, 5:10). 피로 구속받은 사람의 수가 곧 제사장의 수이다. 왜 주님은 빌라델비아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칭찬하시는가? 우리는 중간 계급의 시작이 버가모에 있었고 그 실행이 로마 가톨릭교회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마 23:8)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 ‘목사’는 있으나 목사 제도는 없다. 또한 이 단어는 원문에서 ‘목자’라는 뜻으로서, ‘목동’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 주 예수님은 땅에 있는 그 누구를 여러분의 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지도자’라 불리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에서 ‘아버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개신교에서 ‘목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중간 계급을 없앤 하나의 큰 부흥이 있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고 중간 계급을 없앤 것이다. 이것이 곧 빌라델비아이다. 

   1825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몇몇 성도들이 하나님께 마음의 감동을 받아, 어떤 교파에 속했든지 상관없이 단순하게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사랑했다. 이 사랑은 교파의 담장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여러 종파로 나누었지만, 그들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여전히 하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성경을 읽으면서 한 사람이 교회의 행정을 관리하는 제도나 한 사람이 설교를 하는 제도는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일마다 집회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일천여 년의 로마 가톨릭교와 수백여 년의 개신교 이후인 1825년에 처음으로, 성경에 나타난 단순하고 자유롭고 영적인 경배로 돌아온 것이다. 이 성도들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비천하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가운데 주님께서 계셨고 성령의 위로가 있었다. 그들은 두 가지 분명한 진리의 터 위에 서 있었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오직 하나라는 것이다. 둘째, 신약성경 안에는 성직자 계급이 없으며 사람들이 세운 말씀의 사역자들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참된 모든 믿는 이가 이 한 몸의 지체들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오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교파에 속했든지 간에 따뜻하게 환영했다. 그들에게는 종파의 느낌이 없었다. 그들은 참된 모든 믿는 이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또한 승천하신 주님께서 각종 은사를 교회에 주신 것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임을 믿었다. 그들은 이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형제로 환영했고, 성령께서 세우신 모든 말씀의 사역자들에게도 열려 있었다. 

교회의 참된 하나 

1828년에 다비(J. N. Darby)는 <교회의 본성과 합일>이라는 한 권의 소책자를 출간했다. 다비는 이 책에서, ‘형제들’에게는 어떤 새로운 교파나 교회 연합회를 설립하려는 의사가 없음을 표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로, 분열된 단체들의 형식적인 연합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생각이 있는 많은 개신교인들이 이러한 연합을 사모한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나는 이러한 연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다. 이렇게 연합한 단체는 결코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로마 가톨릭교의 연합에 대응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단체 안에서는 교회생활과 말씀의 능력이 완전히 상실된다. 더욱이 영적인 생명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참되게 하나가 되는 것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영께서 일하신 결과라야 가능하다. … 또한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의 영광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을 성공시키고 증진시키기 위해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본성과 소망을 부인해 버리는 일종의 연맹에 불과할 뿐이다. 교회의 하나는 곧 성령의 하나이다(엡 4:4). 이 하나는 성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오직 영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완전해질 수 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을 기다리고,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 기다리며, 성령의 생명에 의해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가야 한다. 만일 그들이 선한 목자께서 어디에서 양 떼를 치시는지 알고자 한다면, 그들은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가야만 한다.” 

   그 몇십 년 동안에 하나님은 다비와 벨렛 외에도 많은 ‘형제들’에게 특별한 사역을 주셔서 그분의 교회가 공급을 받게 하셨다. 고아원을 설립한 조지 뮐러는 믿음의 기도를 회복했다. 일생 동안 그의 믿음의 기도는 백오십만 번이나 응답되었다. 모세오경을 강해한 매킨토시는 예표에 대한 인식을 회복했다. 무디는 전 세계의 책이 다 불타 버린다 해도 그에게 한 권의 성경과 매킨토시의 《모세오경 강해》만 있으면 만족한다고 했다. 조지 커팅은 구원의 확신을 회복했다. 그의 저서 중 하나인 <구원의 보장과 확신과 기쁨>은 1930년에 이미 삼천만 권이 팔려, 성경 외에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되었다. [워치만 니, 교회의 정통,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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