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136호
교회의 정통(8)-빌라델비아 교회(2)
성경: 계 3:7-13
팬턴(D. M. Panton)은 “ ‘형제들’의 운동과 그 중요성은 종교 개혁보다 훨씬 위대한 것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그리피스 토머스(Griffith Thomas)도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진리를 가장 바르게 잘 해석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라고 말했다. 헨리 아이언사이드(Henry Ironside)는 “하나님을 아는 모든 사람은 ‘형제들’을 알든 모르든 직간접적으로 다 ‘형제들’의 도움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운동은 종교 개혁보다도 더 위대한 것이었다.
맏아들과 형제들
“빌라델비아에 있는 교회의 전달자에게 이렇게 편지하여라.”(계 3:7상) 빌라델비아는 형제 사랑이다. 하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무엇을 칭찬하셨는가? 그분은 그들 가운데 있는 형제 사랑을 칭찬하셨고, 중간 계급을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을 칭찬하셨다. 주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내가 나의 아버지 곧 여러분의 아버지…께로 올라간다.”(요 20:17)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장의 그분은 아버지의 독생자이시고, 20장의 그분은 아버지의 맏아들이시다. 1장에서 하나님께는 오직 그 아들만 있으셨지만, 20장에 와서는 그분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써 그분께서 자연히 맏아들이 되시고, 우리는 다 형제들이 되었다.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독생자는 맏아들이 되셨다.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능히 형제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형제인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지킴과 말씀을 부인하지 않음
“나의 말을 지켰고 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계 3:8하) 주님은 그들의 두 가지를 인정하셨는데,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은 것과 주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은 것이었다. 교회 역사 가운데 그 어떤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형제들’처럼 안 사람들은 없었다. 마치 큰 홍수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빛이 많았다. 1825년 이후로 ‘형제들’은 그들이 다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뿐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감리교에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그는 “나는 감리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장로교에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그는 “나는 장로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고, 침례교에 다니는 사람은 “나는 침례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외의 많은 이름을 붙여 자기 자신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직 하나의 이름만으로 자신을 부른다. 주 예수님은 ‘내 이름 안에서 구하고’, ‘내 이름 안으로 모인’(요 16:26, 마 18:20)이라고 하셨다. 우리에게는 오직 주님의 이름이 있을 뿐이다. 조지 휘트필드(G. Whitefield)는 “다른 모든 이름은 제해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 높아지기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형제들’이 일어나서 바로 이와 같이 했다. 주님의 예언처럼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가장 존중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들의 중심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빌라델비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형제들’에게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달리 구별 짓는 이름이 없었다. 그들은 형제들일 뿐 ‘형제회 교회’가 아니다.
시련의 때를 면함
“나도 너를 지켜 주어,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 온 땅에 닥쳐올 시련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계 3:10) ‘시련의 때’는 원문에서 ‘시련의 시각’이므로, 이 절의 원뜻은 “나도 너를 지켜 주어,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 온 땅에 닥쳐올 시련의 시각을 면하게 해 주겠다.”이다. 온 세상이 시련을 당할 때는 대환난을 가리킨다. 그들은 대환난을 당하지 않고 그 시각이 오기 전에 휴거되는 것이다. 성경 전체에서 단 두 곳만 휴거에 대한 약속을 언급했다. 하나는 누가복음 21장 36절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계시록 3장 10절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우리는 느슨하게 시간을 보내지 말고, 빌라델비아가 걸어간 길을 배우며, 주님께서 앞으로 닥칠 모든 시련에서 우리를 구출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너의 면류관
“내가 속히 갈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너의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여라.”(계 3:11) 이것은 분명 빌라델비아에도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님께서 이러한 경고를 하실 리가 없다. 그들에게 있는 위험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있는 위험은 곧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 그들에게 있는 위험은 진보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데 있다. 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이름에 신실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는 위험은 그들이 사랑과 신실함을 잃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십 년 후 ‘형제들’은 분열되었다. 그들은 ‘폐쇄파’와 ‘개방파’의 두 파로 분열되었고, 그 두 파도 또 다른 많은 파로 갈라졌다. 그러므로 빌라델비아에서도 이기는 이를 부르신 것이다.
이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하고, 또 매우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어떤 분열이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거나 적을 때, 사람은 율법을 주의하고 절차를 강조하며 흠을 잡게 된다. 사랑에 문제가 생길 때, 사람은 교만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시기하여 논쟁과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능력이시고, 육체는 분열되게 하는 능력이다. 육체가 처리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분열되고 만다.
교회의 터
그 당시 ‘형제들’의 부족은 교회의 ‘지방’이라는 터와 경계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교회의 부정적인 면, 곧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 곧 교회가 ‘지방’이라는 터와 경계 안에서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본 것이 부족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 땅에 있는 연합 교회의 하나에 주의를 기울였고, ‘형제회’는 하늘에 있는 영적인 교회의 이상적인 하나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보지 못했고, 보았어도 충분하고 철저하게 보지 못했다. 서신서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한 지방에 있는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도 한 지방에 있는 교회의 하나이며, 연결되는 것도 한 지방에 있는 교회의 연결이고, 온전하게 되는 것도 한 지방에 있는 교회의 온전하게 됨이다. 어찌됐든 교회의 하나를 말하는 무리는 다음 둘 밖에 없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땅 위의 모든 교회의 통일을 말했고, 형제회는 하늘 위의 영적인 하나를 말했다. 결국 전자는 외적인 하나에 불과하고, 후자는 사실상 분열적인, 이상주의적인 하나이다. 둘 다 성경에 나타난 한 지방에 한 교회, 그리고 각각의 모든 지방에 있는 교회의 하나를 주의하지 않은 것이다. 형제회는 교회가 한 지방을 경계로 한다는 것을 충분히 주의하지 않았다. ‘폐쇄파 형제회’는 모든 지방을 통틀어 일치된 행동을 요구하여 결국 지방의 경계가 무너져서 연합 교회와 같은 오류에 빠지게 되었고, ‘개방파 형제회’는 각 모임의 독립적인 행정을 요구했으므로 결국 한 지방에 많은 교회가 있게 되어 회중파 교회(조합 교회), 곧 각각의 회중을 독립된 단위로 인정하는 오류에 빠지게 되었다. ‘폐쇄파 형제회’는 지방의 경계를 넘어섰고, ‘개방파 형제회’는 지방의 경계보다 작았다.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교회, 곧 한 지방에 오직 한 교회만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당시 형제회의 문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터에 대한 가르침이 분명하지 않은 데 있었다. ‘형제들’의 운동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방’에 대한 빛은 갈수록 더 밝아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일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시간이 흘러 역사(歷史)가 증명하기를 기다릴 뿐이며, 그럴 때 분명해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겸손하다면, 우리는 긍휼을 얻고 지켜져 잘못되는 데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귀가 있는 사람은 그 영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계 3:13) [워치만 니, 교회의 정통,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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