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81호
새해의 의미(2)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새해를 맞음
연말에 어떤 성도들은 단지 새 달력의 새해 안으로 들어갈 뿐 아니라 새로운 영적인 시작 안으로 들어간다. 연말과 연시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가서 지난해 하나님 앞에서의 상태를 되돌아보고 결산한다. 마치 사업가가 연말 정산을 하듯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적인 회계 장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외적인 회계 장부만 결산하고 내적인 회계 장부는 결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 달력의 새해 안으로 들어가지만 영적인 새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금년부터는 각 성도가 지난해에 대한 합당한 영적인 결산을 갖고 영적인 새해를 합당하게 시작하기를 소망한다. 단지 직업, 학업, 가정의 일과 같은 외적인 것들의 결산을 해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영적인 것들의 결산을 해야 한다. 연말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관해 결산을 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작년에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무엇에 실패하였는지, 이긴 것은 무엇이었는지 숙고해 보아야 한다. 또한 주님이 요구하신 것들에 반응한 것들은 무엇이고 주님의 뜻을 거절한 것들은 무엇인지도 숙고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주님 앞에 가져가서 결산을 내리고 합당하게 정산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날과 달과 해의 바뀜은 빛나는 물체들에 달려 있음
날과 달과 해에 관한 매우 중요한 두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원칙은 빛나는 물체들과의 관계이고, 두 번째 원칙은 죽음과 부활과의 관계이다. 첫 번째 원칙에서 날과 달과 해는 빛나는 물체들 즉 해와 달과 관계가 있다. 날은 지구가 자전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지만 해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시간으로 구성된다. 지구는 24시간마다 자전하고 그 시간동안 해가 한 번 떠오른다. 더 나아가 태양계 안에서 지구는 365일마다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하루는 작은 회전이지만 한 해는 커다란 회전이다.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것은 둘 다 태양과 관련 있다. 달의 바뀜은 달이 지구를 회전하는 것과 관련 있다. 해와 달은 빛나는 물체들이다. 날과 달과 해가 바뀌는 것은 빛나는 물체들과 관련 있다. 새해같이 큰 바뀜이나 달과 같이 중간 정도 바뀜이나 날과 같은 작은 바뀜이나 우리의 영적인 체험에 바뀜이 있는 것은 빛과 관련이 있다. 언제든지 빛을 만나게 될 때마다 바뀌는 것이 있다. 빛이신 하나님(요일 1:5)을 만날 때 바뀌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시자 빛이신 그리스도(요 8:12, 9:5, 12:46)를 만날 때 바뀌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발광체이시다. 태양이 없으면 날과 해가 없고, 달(moon)이 없으면 월들(months)이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다면 크든 작든 영적인 바뀜이 없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바뀌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달려 있다. 영적인 새해를 가지려면 특히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그분을 만나야 한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영적인 상태를 하나님께 갖고 가 그분의 얼굴빛 안에서 그분의 비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날과 달과 해의 원칙은 죽음과 부활임
연말에, 새해 전야에 밤새 금식 기도하는 어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지난해 자신의 생활과 일과 영적인 상태를 가져가서 한 항목씩 기도하며 그분의 빛 비춤을 받는다. 자신의 부족함과 실패와 약함과 실수에 관해 주님의 비춤을 받으면 주님 앞에서 자백하고 그분의 용서와 씻음을 받는다. 자신의 결함과 결점이 폭로됨과 동시에 주님의 공급을 받아 충만케 되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신선한 은혜, 신선한 빛 비춤, 신선한 능력, 신선한 약속을 주님에게서 받는다. 이같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시작을 갖는다. 그들의 과거는 종결되고, 앞으로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 있다. 이러한 예시(例示)는 날과 달과 해에 관한 두 번째 원칙 곧 죽음과 부활의 원칙을 보여준다. 하루가 끝나고 새날이 시작되는 것은 죽음과 부활을 예시한다. 마찬가지로 월말과 연말, 월초와 연초는 죽음과 부활을 예시한다. 날과 달과 해의 끝남과 시작은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우리가 가는 영적인 여정에는 계속적인 죽음과 부활의 체험이 연관되어 있다. 한 번의 끝남과 시작에 뒤이어 언제나 또 다른 끝남과 시작이 있다. 이러한 끝남과 시작은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한 말과 일치한다.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3:13). 뒤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끝남을 가리키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가리킨다. 새해의 첫날에 우리는 지난해가 우리 뒤에 있고 새해, 새로운 시작은 우리 앞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전 것들은 지나갔으므로 모든 것이 새로워야 한다. 주님의 빛 안에서 우리의 과거 약함과 실패와 실수는 종결되므로 다시 가져올 필요가 없다. 새해와 함께 우리는 부활 안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시작, 좋은 시작을 가질 수 있다. 날과 달과 해가 바뀜의 의미는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는 것과 관계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끝남과 새 시작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좋든 나쁘든 옛 체험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미 종결되었고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새해 맞이와 다름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새해를 경축하는 것과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외적으로 새해맞이를 경축하지만 새로운 영적인 시작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들이 시끌벅적하게 경축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 기슭에서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뛰놀면서 경축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들이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뛰놀은 것은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다(출 32:4-6, 고전 10:7).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뛰놀음으로 새해를 경축한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새해의 시작에 시간을 들여 하나님을 만날 때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경축을 위한 시간이 아니고 오히려 슬퍼하고 울고 금식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자신의 황폐한 상태, 교회의 상태와 연관된 실패들, 많은 죄인들이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음, 많은 성도들의 부족한 기능 발휘, 주님의 뜻을 성취함이 부족함, 하나님의 계획이 좌절됨을 본다면 슬픔과 회개가 가득할 것이다.
에스라기 7장 9절은 “그는 첫째 달 초하룻날에 바빌론을 떠나 올라가기 시작하였는데”라고 말한다. 에스라는 첫째 달 첫날에 타락의 땅인 바빌론을 떠났다. 이것은 아주 의미 깊다. 8장 21절에서 에스라는 거룩한 땅으로 귀환하려고 하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금식을 선포하였다. 이는 ‘우리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고 우리 자신과 어린아이들과 모든 소유물을 위해 곧은 길을 그분께 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락과 포로됨의 땅인 바빌론을 떠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첫째 달 초하룻날에 금식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슬퍼하고 자백하고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그분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새해가 시작될 때 하나님의 긍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빛 비춤을 받는다면 우리는 경축하기보다 애통하며 통곡할 것이다. 잔치하는 대신 금식할 것이고 즐거워하기보다 슬퍼할 것이다. 우리는 울며 슬퍼할 것이고 기도하고 간구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진실로 새로운 영적인 해의 새로운 시작을 갖게 될 것이다. 부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은혜를 주심으로써 해마다 새로운 영적인 해 안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바란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필요와 하나님의 목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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