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82호
요한복음에 나오는 두 영
성령과 사람의 영
요한복음에는 성령과 사람의 영이 여러 번 언급된다. 요한복음 3장 6절은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사람의 영 안에 계신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이 구절에 언급된 첫째 영은 하나님의 영이고 둘째 영은 사람의 영에 미친 성령의 영향력이다. 하나님의 영께서 사람의 영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 영적인 열매를 산출한다. 즉 그 영께서 영을 낳으신 것이다. 낳는다는 것은 출생을 의미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의 시작을 가리킨다. 영께서 영을 낳으신다. 영께서 영을 출생시키신다.
요한복음 4장 24절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도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의 문제를 보여 준다. 이 구절은 우리의 경배를 받는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우리는 그분을 우리 영 안에서 경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영적 생명은 영적인 출생으로 시작되지만, 출생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활은 경배의 문제이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속한 모든 방면들은 이런 종류의 경배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우리의 영으로 그 영을 경배하는 문제가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요한복음 3장 6절은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의 영을 낳으신 것을 가리키고, 4장 24절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경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영을 출생시키시고 그런 다음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을 경배한다.
요한복음 6장 63절은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라고 말한다. 헬라어에서 이 구절은 그 영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사람을 살게 만드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 영께서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접촉하실 때 그분 자신이 친히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신다. 그러면 우리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게 되고 그 생명으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위의 세 구절은 그 영께서 우리 영을 낳고, 우리 영은 그 영을 경배하고, 그 영은 생명이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만지실 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살아 있게 하시고 우리를 능히 그분에 의해 살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다 생명의 문제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영 안에 사는 사람임
비록 하나님께서 비밀스럽고 무소부재한 분이시지만 이제 우리는 그분께서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그리스도는 그 영이시며, 그 영은 우리 영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있고 하나님을 만나고 접촉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계신 곳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접촉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북극으로 가야 하는가, 남극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달에 가야 하는가? 하나님은 아주 위대하고 비밀한 분이시지만 그분은 실재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진리의 영, 곧 실재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실재가 되실 수 있다(요 14:27, 15:26, 16:13). 그분께서 진리의 영이시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께서 교리의 영이시라는 뜻이 아니고 실재의 영이시라는 뜻이다. 우주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사람들이 그분께서 계신 곳을 묻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영이시고 그 영은 하나님의 실재이시고 오늘날 이 영은 우리 영 안에 계시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인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가치도 없다. 그러나 기묘한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영을 창조하셨다는 것이고(욥 32:8, 슥 12:1) 영 하나님, 곧 비밀스럽고 풍성하신 이 귀하고 가치 있는 영께서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딤후 4:22, 롬 8:16).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의 영으로 돌이키면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한 가지 요점은, 우리가 외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내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롬 2:28-29). 우리는 외적인 규칙들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지 말고 영 안에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얼굴을 벽에 댈 때 코가 가장 먼저 벽에 닿는다. 왜냐하면 코는 우리 얼굴에서 가장 돌출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영 안에서 살고 있는가의 여부를 알 수 있는 길은 어떤 일이 그에게 발생할 때 그의 존재의 어느 부분이 가장 처음 나타나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자매들은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웃거나 울거나 의기양양해지거나 낙심한다. 그들은 자신의 강한 감정 안에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감정이 그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생길 때 그들의 존재에서 가장 먼저 만져지는 부분은 그들의 감정이다. 어떤 형제들은 의지가 매우 강하다. 그들이 일단 결심을 하면 아무도 그들을 바꿀 수 없다. 어떤 형제들은 매우 강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형제들은 영으로 돌이킬 수 없고 영 안의 느낌을 만질 수 없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애통한 소식을 들어도 즉시 눈물을 흘리지 않고 기쁜 소식을 들어도 흥분하지 않는 성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성도들의 경우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그들의 영이다. 그들의 가장 두드러지고 인상적인 특징은 그들의 영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먼저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은 곧 우리의 영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엡 6:18상).
그런 식으로 사는 어느 형제를 만난 적이 있다. 어느 날 아내가 죽어 가고 있다는 전보가 그에게 왔다. 이 형제는 전보를 받았을 때 놀라지 않았고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리에게 “형제님들,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말하고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기도는 나의 영과 내 깊은 느낌을 만졌다. 이 형제는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의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영으로부터 기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 안에 있었다. 어떤 자매들은 울기 시작했고 어떤 형제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에게 기차표를 사 주어 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형제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한 일은 자신의 영을 사용하여 기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접촉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주님께 물었다. 그는 자신의 영이 하나님의 거처임을 알았고(엡 2:22),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는 기관이 자신의 영임을 알았다. 그는 사람이 보기 위해 눈을 사용하고 듣기 위해 귀를 사용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접촉하기 위해 자신의 영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항상 자신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였고 하나님과 교통하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교리와 가르침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그리스도는 그 영이시며 그 영은 우리 영 안에 계신다는 이 영광스런 계시이다. 우리는 이 이상을 보아야 하며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그 영을 만져야 한다. 우리는 성령께 입지를 드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분량이 증가될 것이며 교회가 건축될 것이다. 교회의 건축은 우리 영 안에서 이루어진다. 함께 건축된다는 것은 우리가 같은 느낌이나 감정이나 의견 안에서 함께 건축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건축되는 것은 같은 영 안에서 함께 건축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함께 건축되어,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가 된다.”(엡 2:22)
[위트니스 리, 전집 1963년,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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