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30호
사람의 영 (1)
“사람의 영은 여호와의 등이라 내적 존재의 모든 깊은 곳을 살핀다.”(잠 20:27)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 곧 사람의 영을 다룰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 되실 수 없으시다. 우리 밖에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우리의 생명이 될 수 없다. 어떤 것이든 우리의 생명이 되려면 반드시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이 영적인 생명이신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때 우리의 어느 부분 안으로 들어오셨는가? 예를 들어 우리가 음식을 취할 때 눈 속으로 넣지 않는다. 우리는 음식을 귓속으로 넣지도 않는다. 우리는 음식을 입 안으로 넣으며 입을 통하여 그 음식이 우리의 위 안으로 들어온다. 위가 음식을 저장하고 담기에 합당한 곳이다. 마찬가지로 생명이신 하나님은 우리 안으로, 곧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우리 사람의 영을 놓쳐 왔다.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속생명
사람의 영이 성경에 많이 언급되어 있는데도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놓쳐 왔고 지금도 놓치고 있다. 주님은 교회생활과 함께 속생명을 회복하기를 갈망하신다. 속생명은 교회생활의 기초이다. 만일 우리가 속생명 안에서 합당하지 못하거나 강하지 못하다면 합당한 교회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교회생활은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속생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속생명은 전적으로 우리의 영 안에 있다. 학교에서 우리는 합당한 기관인 생각을 사용하여 공부한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또 다른 기관인 영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을 접촉하고 경배한다. 이 영은 성령이 아니다. ‘사람의 영’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즉시 그것을 성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대부분이 우리에게 사람의 영이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람의 영이 있다. 하나님의 성령 외에 사람의 영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접촉하며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우리의 영을 사용한다. 신체적인 훈련을 위해 운동장에 가서는 우리의 몸을 사용해야 한다. 공부하기 위해 학교에 가서는 우리의 생각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접촉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생명의 호흡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두 종류의 재료로 창조하셨다. 하나는 땅의 흙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분 자신에게서 나온 생명의 호흡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몸을 만드시기 위한 재료로 땅의 흙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셨고 사람은 산 혼이 되었다. 두 종류의 재료, 곧 몸을 만들기 위한 흙과 이 몸 안으로 들어간 생명의 호흡의 결과는 산 혼인 산 사람이다. 흙으로 지어진 것은 몸이고 산 혼인 사람은 혼이다. 또한 몸 안으로 들어간 생명의 호흡은 사람의 영이다. 잠언 20장 27절은 사람의 영이 여호와의 등(lamp)이라고 말한다. 구약에서 영에 대한 히브리어는 대부분 ‘루악(ruach)’이다. 이 말은 영, 호흡, 공기, 바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잠언 20장 27절의 영은 히브리어로 ‘루악’이 아닌 창세기 2장 7절의 ‘호흡’에 사용된 것과 같은 말인 ‘네샤마(neshamah)’이다. 구약에서 적어도 한 구절이 창세기 2장 7절에 언급된 생명의 호흡이 사람의 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모팻(Moffat)역에서는 잠언 20장 27절의 영을 양심으로 번역하고 있다. 모팻역이 사람의 양심을 여호와의 등(lamp)이라고 말하는 것은 양심이 사람의 영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롬 9:1, 8:16).
하늘과 땅과 사람의 영
스가랴서 12장 1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에 네 가지 주요 항목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첫째로 하늘들을 펴시고, 둘째로 땅의 터를 세우시며, 셋째로 사람의 영을 지으셨다. 하나님의 창조에 이러한 세 주요 항목들이 있다. 하늘들에는 많은 것들이 있고 땅에도 많은 항목들이 있으며 사람에게도 많은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스가랴서 12장 1절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영만을 언급한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은 인간 존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이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요 3:6, 딤후 4:22, 롬 8:16, 고전 6:17). 이것이 전략적인 지점이다. 만일 우리가 이 지점을 놓친다면 과녁을 놓치고 만다. 전기가 건물 안으로 설비되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지점은 바로 스위치이다. 라디오의 수신기는 라디오 전파가 들어오는 전략적인 곳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 중심 지점은 사람의 영이다.
모든 인류의 영
욥기 12장 10절은 모든 생물들의 혼과 사람의 영을 언급한다. 모든 생물들은 혼을 가지고 있을 뿐 영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우리 인간들만이 영을 가지고 있다. 개는 혼이 있으나 영은 없다. 원숭이는 꽤 영리하다. 왜냐하면 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숭이는 영이 없다. 당신은 작은 원숭이들이 우상이 있는 사당을 세우고 경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그러한 일은 없었다. 어떤 것을 경배하는 동물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문화인이든 미개인이든 어떤 것을 경배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경배하는 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는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영이 있다. 개에게는 영이 없다. 고양이에게도 영이 없다. 오직 인간에게만 그러한 영이 있다. 욥기 12장 10절은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류의 영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고 말한다. 모든 생물에게는 혼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혼이 있을 뿐 아니라 영도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결코 다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숭이와 다르다. 원숭이는 단지 혼이 있을 뿐 영은 없다.
하나님 편에서는 신성한 영인 하나님의 영께서 계시고, 우리 편에서는 사람의 영이 있다. 이 두 영이 서로 만날 때 신성한 ‘관계’가 있게 된다. 신성한 영인 하나님과 우리 사람의 영이 서로 만남으로써 그와 같은 신성한 관계를 갖는다. 하나님과 교통할 때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영만큼 중요하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길이 없다. 같은 원리로 사람의 영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수단이나 기관이 없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그러한 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훌륭한 의학 박사가 되기 원한다면 반드시 신체를 연구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합당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사람의) 영을 연구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사람의 영,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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