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41호
열 처녀의 비유(1)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습니다.”[마 25:1]
처녀들(Virgins)
처녀는 생명의 방면에서 본 믿는 이들을 상징한다(고후 11:2). 왕국 백성인 믿는 이들은 순결한 처녀들과 같아서 어두운 시대에 주님의 증거(등)를 가지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세상에서부터 나온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서 그들에게는 성령의 내주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도 필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첫째로 처녀들이다. 처녀가 되는 것은 일이나 봉사나 활동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다. 더구나 우리는 다만 처녀일 뿐 아니라 정결하고 순결한 처녀이다. 처녀가 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우리 자신이 어떠한가의 문제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우리는 처녀들이다. 우리는 처녀같이 처신하고 결코 처녀의 신분을 팔지 말아야 한다.
등(lamp)을 들고 있음
1절은 처녀들이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밖으로 나갔다고 말한다. 등(lamp)이란 믿는 이들의 영(spirit)을 상징하는데(잠 20:27), 거기에 하나님의 영을 기름으로 담는다(롬 8:16). 믿는 이들은 그들의 영 안에서부터 하나님의 영의 빛으로 빛을 낸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이 시대의 어둠 안에서 빛을 발하는 등처럼 세상의 빛이 되어(마 5:14-16, 빌 2:15-16)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주님의 증거를 지니고 있다. 처녀들로서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고 빛을 발하고 비추기 위한 등(lamp)을 들고 있다.
신랑을 맞으려고 세상에서 나감
처녀들은 나갔다. 이것은 믿는 이들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하여 세상에서부터 나왔음을 상징한다. 처녀들은 어느 곳에서도 머뭇거리거나 정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팬톤(D. M. Panton)은 그의 저서에서, 세상은 자기에게 다만 하나의 오솔길일 뿐이고 이 오솔길의 끝에는 무덤 하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만일 주님께서 더디 오신다면, 세상은 결국 나에게 하나의 안식처 곧 무덤만을 제공해 줄 것인데, 그곳에서 나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누워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정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있다.
신랑은 즐겁고 매력적인 사람인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 3:29, 마 9:15). 이 비유에서 주님은 자기 자신을 승전한 장군이나 위대한 사령관으로 비유하지 않으시고, 가장 즐거운 사람인 신랑으로 비유하셨다. 얼마나 좋은가! 이처럼 우리는 나가고 있는 처녀들이요, 그분은 오시고 계신 신랑이시다.
그릇에 기름이 없는 어리석은 처녀들
2절은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다섯은 넷에 하나를 더해서 이루어진 숫자이다. 그것은 하나님(하나로 상징됨)이 더해진 사람(넷으로 상징됨)이 책임을 짊어지는 것을 상징한다. 다섯 처녀는 어리석고 다섯 처녀는 현명하다는 사실은 믿는 이들 중 반은 미련하고 나머지 절반은 현명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믿는 이들이 성령으로 충만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구약은 다섯이 책임의 수라는 것을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다. 넷이라는 숫자는 피조물을 상징하고 하나라는 숫자는 창조주를 상징한다. 피조물 더하기 창조주는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준다. 만일 엄지손가락은 없고 네 손가락만 있다면, 그 무엇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해질 때 우리는 책임을 짊어질 수 있게 된다. 다섯 처녀들이 어리석다는 것이 그 처녀들을 가짜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본성에 있어서 그들은 현명한 처녀들 다섯과 동일하다. 3절은 그들이 어리석은 이유를 말해 준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기름은 하나님의 영(Spirit)을 상징한다(사 61:1, 히 1:9). 어리석은 이들은 등만 가졌을 뿐 그릇에 여분의 기름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어리석었다. 거듭나게 하시는 그 영에 추가해서 그들은 내적 충만의 그 영 곧 여분(extra portion)의 성령을 갖지 않은 것이다.
그릇에 기름을 가진 현명한 처녀들
4절은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지어진 그릇이고(롬 9:21, 23-24), 사람의 인격(개성)은 그 혼(soul) 안에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릇이란 믿는 이들의 혼을 상징한다. 현명한 다섯 처녀는 등에 기름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릇에도 기름을 가졌다. 등에 기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들의 영(spirit)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계신다는 것을 상징하고(롬 8:9, 16), 그릇에 기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그들의 혼(soul)을 충만하게 하시고 적시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등과 그릇에 관해 매우 분명해야 한다. 잠언 20장 27절은 사람의 영을 여호와의 등이라고 말한다. 등 안에는 기름 곧 성령이 있다. 신약은 우리의 영이야말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장소임을 계시한다. 로마서 9장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릇들이다. 우리의 존재, 우리의 인격은 우리의 혼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의 그릇은 우리의 혼을 상징한다.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하나님의 영을 갖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등을 타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우리 혼을 충만하게 하는 여분(extra portion)의 성령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에 있다. 우리의 등 안에 기름이 있더라도 우리에게는 혼 안에 들어 있는 여분의 기름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 영께서 반드시 우리 영에서부터 혼의 각 부분에 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면 우리의 혼 안에는 여분의 성령이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이 여분이 있다면 우리는 현명한 것이다. 만일 여분을 갖지 못했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것이다. 달리 말해서 만일 우리가 성령의 내적 충만에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혜롭다면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주여,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 저는 당신의 영이 제 영 안에 계실 뿐 아니라, 제 혼 안에도 계시길 원합니다. 주여, 저에게는 그 영의 내적 충만이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저의 전 존재를 채우는ㄴ 여분의 성령이 필요합니다.” 이 여분의 그 영이 없이는, 우리가 깨어 있을 수도, 예비하고 있을 수도 없다. 깨어 있고 예비하고 있으려면 성령의 내적 충만, 즉 그 영 자신이 우리 영에서부터 내적 존재의 모든 부분(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퍼지는 것이 필요하다.
[위트니스 리,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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