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휴거된 사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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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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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50호

최초로 휴거된 사람 (2)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않았다.”(창 5:24)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성숙함

당신은 휴거되기를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갈망에 따라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 없이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그분을 우리의 중심과 모든 것으로 취하는 것이며, 그분의 계시와 인도를 따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이며, 모든 일을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고 일하는 것이다. 에녹은 자신의 갈망과 관념을 따르지 않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조류를 따르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고 일했다.

   다른 사람과 동행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형제들이나 가족들과 거닐 때 그들은 다 내가 너무 빨리 걷기 때문에 나와 보조를 맞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내게 천천히 걸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나는 형제들과 가족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당신이 나와 동행하고자 하는가, 내가 당신과 동행하기를 원하는가? 먼저 누가 누구와 동행하고자 하는지를 결정하자. 만일 당신이 나와 동행하고자 한다면 나와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너무 빨리 걷는다고 나를 나무라지 말라. 만일 내가 너무 빨리 걷는다고 불평한다면 나를 잊어버리고 당신만큼 느린 사람과 동행하라. 그러나 나와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내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만일 내가 당신과 동행하기 원한다면 나는 당신의 보조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과 동행하시는가,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는가? 하나님께서 에녹과 동행하셨는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에녹과 동행하셨다고 말하지 않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과 동행하셨다고 말한 곳을 찾기는 어렵다. 우리는 누가복음 24장에서 이런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부활하신 날 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셨다. 제자들이 주 예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다. 언제든지 주님께서 당신과 동행하시면 그것은 당신이 하향길을 걷고 있음을 뜻한다. 당신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ㄴ주님과 동행하는가, 그분께서 당신과 동행하시는가? 다시 말하면 당신은 올라가고 있는가, 내려가고 있는가? 예를 들면, 당신이 극장으로 내려갈 때에는 주 예수님께서 당신과 동행하실 것이다. 많은 때에 주님은 이렇게 성도들과 함께 내려가셨다. 수많은 성도들은 주님께, “주여,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극장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럴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극장에 가겠느냐? 나도 너와 함께 가겠다. 나도 너와 함께 내려가겠다. 왜 내가 너와 동행하는지 아느냐? 너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이다. 너는 엠마오로 가는 하향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나는 너희 모두가 예루살렘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 네가 하향길을 가기 때문에 나는 너와 함께 가야 한다. 나는 너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너와 동행해야 한다.”

300년 동안 주님과 동행함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여 오르막길로 행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신 것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지 말라. 한순간은 땅 위에 있었다가 다음 순간에 하늘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지 말라. 에녹은 하나님과 오르락내리락하며 걷지 않았으며 지그재그(zigzag) 모양으로 걷지도 않았다. 그는 하늘에 닿을 때까지 계속 오르막길을 걸었다. 그가 365 세가 되어 거의 하늘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얘야, 내가 여기 있다. 이리 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에녹은 데려감을 당한 것이다. 그는 삼 세기 동안, 곧 십만 일 이상을 밤낮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는 매일매일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전날보다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는 상황, 환경, 사람들과 그들의 소행을 보고 모든 것이 경건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300 년 동안이나 계속하여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나님과 동행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함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 사랑, 선택에 있어서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한다. 내가 이미 지적했듯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동행하기는 쉽지 않다. 가령 내가 당신과 함께 걸을 때 당신과 다른 생각을 지니고서, “형제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는 가지 마십시오. 이 길로 돌아서십시오. 나는 그 길로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자. 만일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당신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다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그들은,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따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지로 때가 오면 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동행하지 않고 다투게 된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것, 곧 당신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생각과 사랑을 부인하고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부인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당신이 자신을 주님께 드렸으며 주님께 굴복했으며 그분께 주도권을 드렸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동행함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므두셀라라 했다(창 5:22).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예언적인 의미가 있다. 그 뜻은 ‘그가 죽을 때에 그것(홍수)이 온다’이다. 그것은 홍수에 대한 예언이었다. 그는 자기 아들을 므두셀라라 이름함으로써 장차 올 홍수의 심판을 예언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그분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으로 영감을 받아 장차 모든 경건하지 않은 세대에 임할 심판에 대해 알게 되었다. 홍수에 대한 에녹의 예언은 그가 65세에 한 것이다. 그 후로 그는 밤낮으로 예언이 성취될 것을 기대했으며 그 기대로 인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전 세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경건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은 감히 경건하지 않은 자들처럼 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것을 바라보며 거룩하게 하나님과 동행했다. 에녹은 이런 기대를 300년 동안이나 간직했다. 주님은 우리에게 속히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1900여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오지 않으셨다. 여기에 하나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타고난 인내가 다 소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타고난 인내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면 실망하고 지치게 될 것이다. 시기 문제는 잊어버리고 다만 하나님과 동행하라. 그분께는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

[위트니스 리, 창세기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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