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비둘기-돌-집

어린양-비둘기-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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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53호 어린양-비둘기-돌-집 (생명과 건축에 대한 소개) 요한복음 1장 후반부의 주제는 비둘기로 상징된 성령과 함께 계시며, 사람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해 믿는 이들을 돌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이시다. 이 주제는 다섯 가지 주요 항목들-어린양, 비둘기, 돌, 하나님의 건축, 사람의 아들-로 구성된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구속을 위한 것이고, 비둘기는 생명의 분배와 변화와 건축을 위한 것이며, 돌은 재료이고 집은 건축이며, 하나님의 건축의 실체는 사람이다. 첫째로 사람은 어린양에 의해 구속되며, 그럴 때 비둘기에 의해 거듭나고 변화된다. 그 사람은 돌이 되고, 이 돌은 비둘기에 의해 하나님의 집으로 건축된다. 어린양의 구속하심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침례자 요한이 보았을 때, 그는 “보십시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종교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오지 않으셨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작은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 오셨다.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를 흘리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필요하다. 생명 주시는 성령인 비둘기 요한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천거했을 뿐만 아니라 비둘기가 함께 있는 어린양으로서 천거했다(32-33절). 어린양은 사람의 죄를 처리하고, 비둘기는 사람에게 생명이신 하나님을 가져다준다. 비둘기는 크거나 거칠지 않다. 비둘기는 작고 유순하다. 여기서 비둘기는 성령을 의미하며, 생명 주심과 거듭남과 기름부음과 변화와 연합과 건축을 위한 것이다. 비둘기는 능력이나 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것이다. 어린양은 구속, 곧 타락된 사람을 하나님께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고, 비둘기는 생명 주심과 기름부음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으로 사람에게 기름 바르고, 하나님을 사람에게,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믿는 이들을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여하기 위해서는 두 방면이 다 필요하다. 돌로 변화되는 믿는 이들 어린양과 비둘기에게 마음이 끌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 안드레는 자신의 형제 시몬을 찾아서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갔다(요 1:41-42). 주님께서 시몬을 보시고 그의 이름을 게바, 즉 베드로로 바꿔 주셨는데, 그것은 ‘돌’을 의미한다. 주님은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교회 건축에 대해 베드로에게 말씀하실 때 이 말을 언급하셨다. 이것으로부터 베드로는 영적인 집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살아 있는 돌에 대한 개념을 얻었음에 틀림없다(벧전 2:5). 돌은 하나님의 건축을 위하여 재료를 산출해 내시는 성령의 변화시키는 일을 의미한다(고전 3:12). 요한복음 1장 후반부에 어린양과 비둘기와 돌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상징이다. 이러한 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어린양에다 비둘기를 더할 때 돌이 산출된다는 의미이다. 거듭남에 구속과 변화를 더해서 돌을 산출한다. 어린양은 무엇인가? 출애굽기 12장에 의하면, 유월절 어린양은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죽인 바가 되었고, 그들의 만족을 위해서 먹힌 바가 되었다. 비둘기는 무엇인가? 구약에서 비둘기는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피조물임을 보았다 이와 같이 비둘기는 인류에 도달하고, 사람에게 생명을 분배하시는 성령을 나타낸다. 사람에게 머무는 이 비둘기는 구속과 연결되어서 돌을 산출한다. 이 돌들은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해 있다. 하나님의 집(벧엘)의 건축을 위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요 1:51) 고대의 유대인들은 이것이 야곱의 꿈에 대해서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창 28:10-22). 야곱은 그의 형을 피해서 광야에서 하룻밤을 유숙하려고 돌 하나를 가져다가 머리에 베고 누워 잠을 잤다. 꿈에 그는 하늘이 열리고 땅 위에 사다리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 야곱이 잠이 깨어 말하기를 “이곳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며 하늘의 문이구라.”(창 28:17)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베개로 사용했던 돌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다. 나다나엘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야곱의 꿈을 이룬 것이었다. 인성 (humanity)을 지닌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땅 위에 세워져 하늘에 이르는 사다리이며,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하늘을 열어 땅을 하늘에 연결시키며, 하늘을 땅에 연결시킨다. 돌(변화된 사람을 상징함) 위에 기름(성령)을 부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집이 되게 했다. 요한복음 1장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인성을 가진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성령(32절)과 돌(42절)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있는 곳에는 열린 하늘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을 열어 땅을 하늘에 연결시키고 하늘을 땅에 이끄는 사다리이시다. 그리스도가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하늘의 문이 있고, 벧엘이 있고, 모든 돌들, 즉 모든 변화된 사람들이 있는 하나님의 집의 건축이 있다. 요한복음은 놀랍고 심오하다. 예수님께서 비둘기가 함께하는 어린양으로 소개되신 후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기 시작했다. 비둘기가 함께하는 어린양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중대하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죄 문제가 있었다. 사람은 또한 생명이 결핍되어 있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이 생명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죄만 있었고 생명은 없었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왔다. 비록 어린양이 죄를 없애고 죄 문제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생명은 어떠한가? 비둘기는 생명을 나눠 주기 위해 왔다. 할렐루야, 죄는 제하여졌고, 생명이 분배되어졌다! 죄는 지나갔고 생명이 왔다. 이것이 구속에 기름부음을 더한 것이다. 구속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고, 기름부음은 생명과 생명 공급을 가져온다. 우리는 구속을 받고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 있기 때문에 죄 문제가 없으며 생명의 결핍이 없다. 죄를 제거함과 생명 공급의 결과로 우리는 변화의 과정 안에 있다. 변화는 기름 붓는 성령의 역사이다. 우리가 거듭난 후에 성령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를 변화시켜 돌들로 만든다. 우리는 천연적인 출생에 있어서는 진흙이다. 거듭난 후에 우리는 변화의 과정 안에 있게 된다. 왜냐하면 거듭나게 하는 성령이 이제는 변화시키는 성령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변화되어 돌들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요한복음 1장에 계시된 하나님의 집의 건축을 본 그리스도인은 극히 드물다. 생명은 목표가 아니다. 건축이 목표이다. 생명은 과정이며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건축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것이 생명의 목표 곧 하나님의 목표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본 내용의 PDF 형식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려면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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