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다리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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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53 (한국일보)

시간의 다리 위에서   

요한복음 1장은 영원의 두 부분을 계시한다. 1절은 영원 과거(eternity past)를 말하고 마지막 절인 51절은 영원 미래(eternity future)를 말한다.  영원의 이 두 부분 사이에는 시간(time)이라는 다리가 있다. 영원 과거에서 하나님은 계획하셨고 뜻을 세우셨지만 어떤 것도 하지 않으셨다. 영원 미래에서 하나님은 어떤 것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모든 것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 미래에서 그분은 다만 마치신 일을 누릴 것이다. 영원 과거에 계획하셨고, 영원 미래에는 누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루어야 할 모든 것을 시간의 다리 위에서 성취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의 자동차를 영원의 첫 부분에서부터 시간의 다리를 통과하여 영원의 마지막 부분까지 운전하고 계신다. 시간의 다리를 가로질러 차를 운전함으로써 이루어야 할 모든 일이 완성된다. 일단 하나님께서 영원 과거로부터 시간의 다리를 지나 영원 미래로 들어가신다면, 그분은 “다 마쳤다.”라고 선포하실 것이다. 이 시간의 다리는 얼마나 되는가? 육천 년 정도의 기간이 될지도 모른다. 이 시간의 다리 위에서 하나님은 다섯 가지의 일을 완성하신다.

창조(Creation)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겼으니, 생겨난 것이 그분을 떠나서 생긴 것은 하나도 없다”(요 1:3). 창조를 통해 사물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창조의 의미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는 것이며(롬 4:17), 창조의 목적은 생명이신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담는 그릇을 산출하는 것이다. 창조 안에 있는 항목들-하늘, 땅, 수십억 개의 물질적인 것들, 사람 등-을 생각해 보라. 창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성경에 의하면 하늘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슥 12:1).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한다. 광물과 식물과 동물이 모두 사람을 위해 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사람을 위해 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담고 그분의 목적을 이룸으로써 하나님을 위한다.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이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받을 수 있는 수신기이다. 창조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땅을 위하여 하늘들을 만드셨고, 사람을 위하여 땅을 지으셨고, 하나님을생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신기인 영이 있는 사람을 지으셨다.  

육체 되심(Incarnation)   

두 번째 항목은 육체 되심이다. “말씀께서 육체가 되시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니”(요 1:14). 창조가 없었다면 하나님은 육체 되실 길이 없었을 것이다. 창조로써 그분은 육체 되심의 길을 준비하셨고, 방법을 갖게 되셨다. 창조로 사물이 존재하게 되었고, 육체 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창조물 안으로, 사람 안으로 오게 되셨다. 이것은 모든 기적 중 가장 큰 기적이다. 육체 되심으로 하나님은 사람 안에 들어 오셔서 사람과 하나 되셨다.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단위가 된 것이다. 또한 육체 되심은 말씀과 생명과 빛과 은혜와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표명한다. 육체 되심 안에서 말씀 곧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셨다. 말씀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되고 설명되고 정의되신 하나님이다. 생명은 사람들이 영접할 수 있도록 분배되신 하나님이요, 빛은 사람들이 그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밝혀 주는 빛을 내시는 하나님이다. 은혜는 사람이 그분의 풍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 의해 누린 바 되신 하나님이다. 진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실재(reality)로 소유할 수 있도록 사람에 의해 실재화되신 하나님이다. 이 다섯 가지를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에게 완전히 표명되셨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께 참여하고 하나님을 모든 것으로 누릴 수 있기 위한 것이다.

구속(Redemption)  

시간의 다리 위에 있는 셋째 항목은 구속이다.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요 1:29) 이 땅 위에서 33년 반을 사신 후에 주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가셨다. 구속으로 주님은 타락된 사람을 회복하셨고 죄에서 분별시키셨다. 구속으로 하나님은 죄를 없애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옛창조를 끝내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옛창조를 무덤으로 가지고 가셨다. 그분께서 죽음에서 일어났을 때 옛창조를 무덤에 남겨 놓고 새창조의 머리로서 부활하여 나오셨다.  

기름부음(Anointing)  

기름부음은 구속 다음에 있는 일이다. “나는 그 영(The Spirit)께서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그분 위에 머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요 1:32) 기름부음은 비둘기, 즉 그 영(성령)을 통해 온다. 어린양은 죄를 없앴고 옛창조를 끝냈다. 비둘기, 즉 그 영은 거듭나게 하고, 생명을 분배하고, 변화시키고, 연합하게 하고, 건축한다. 비둘기, 즉 그 영으로서 창조된 사람이 거듭나고 자연 그대로의 사람이 변화되며 변화된 사람이 연합된다. 우리는 세 가지 상태 중에 한 가지 안에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거듭남이 필요한 창조된 사람일 수 있다. 또 우리는 거듭났으나 아직 너무 천연적이어서 변화가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또는 변화된 사람이지만 아직 분리되어 있고 개인주의적이어서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가 합당하게 변화된다면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연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거듭날 필요가 있고, 둘째로 변화될 필요가 있으며, 셋째로 건축을 위해 연결될 필요가 있다. 비둘기, 즉 그 영은 거듭나게 하고, 변화시키고, 건축을 위해 연결되게 한다.

건축(Building)  

마지막에는 건축이 있다(요 1:42, 51). 이 건축은 하나님의 집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하여 거처를 건축하고 계시고 변화된 사람들을 돌들로 사용하고 계신다(42절). 우리는 변화되는 일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건축되는 과정에 있다. 하나님은 많은 돌들이 아닌 하나의 집이 필요하시다. 영원토록 하나님은 그분의 처소로서 건축된 집, 즉 벧엘을 필요로 하신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되고 교회가 건축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거의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 예비되지 않았다. 비록 숫자는 적을지라도 주님에 의해 그리고 주님과 함께 완전히 과정을 거치고 적셔지고 변화되고 건축되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위해서는 주님을 찾는 이들이 견고히 건축될 필요가 있다. 이 건축물은 그분이 이 땅을 취하시기 위해 발을 내딛기 위한 디딤돌 곧 교두보가 될 것이며 또한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상호 거처가 될 것이다. 이 건축물은 영원토록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며 인성과 신성의 연합일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거처인 이 건축물은 야곱의 꿈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궁극적인 성취일 것이다. 이것은 시간의 다리를 마감하고 미래에 축복된 영원 안으로 안내될 것이다. 반드시 우리는 그 건축을 위해야 하고 또 그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 시간의 다리 위에서 이 다섯 가지 항목이 모두 이루어진 후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 미래로 들어갈 것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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