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55 (중앙일보)
죽음의 물이 생명의 포도주로
요한복음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시는 생명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러한 원칙에 의해서, 요한복음 2장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사건은 단순한 이야기를 기술한 것이 아니고 특별히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갖고 있다.
생명의 원칙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은 단순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께서 생명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 성취하신 표적이다. 생명의 원칙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원칙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것이다. 3장에서 11장까지에 기록된 아홉 가지 사건들 각각에 있는 원칙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것이다.
삼 일째 되던 날에
이 표적을 행하신 날은 ‘삼 일째 되던 날’이었다(요 2:1). ‘삼 일째 되던 날’은 부활의 날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에서 ‘이튿날’이라는 말이 29절, 35절, 그리고 43절에서 세 번 사용된다. 왜 1장에서 ‘이튿날’이 세 번 사용되었는데 2장 1절에서 ‘삼 일째 되던 날’이 사용되었는가? 2장에서의 ‘삼 일째 되던 날’은 실지로 다섯째 날이어야 한다. 아마 당신은 요한에게 가서, “요한 형제님, 당신은 틀렸습니다. ‘이튿날’이 세 번 있으니까, 2장 1절에서는 다섯째 날이 되어야만 합니다.”라고 따질지 모른다. 요한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형제여, 그래서 나는 1장에서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이라 말하지 않고 2장에서 ‘삼 일째 되던 날’이라고 부를 때까지 그들을 각각 ‘이튿날’이라고 부른 겁니다.”
갈대의 땅 가나에서
가나는 히브리어로 ‘갈대의 땅’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갈대는 상하기 쉬운 사람을 상징한다.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에서는, 약한 사람들인 우리를 주님께서 꺾지 않으시는 ‘상한 갈대’라고 말한다(사 42:3, 마 12:20). 마태복음 11장 7절에서 주님께서 침례자 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유대인들에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고 물으셨다. 온 세상은 약하고 상하기 쉬운 사람들로 가득 찬 일종의 가나이며,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오셨다.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 잔치
동서고금에서 결혼 잔치는 주로 포도주에 달려 있고 이것은 모든 인간의 기쁨이 생명에 달려 있음을 상징한다. 물과 달리 포도주는 포도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것은 살아 있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포도주가 포도의 생명이기 때문에 포도주는 생명을 의미한다. 결혼 잔치에서 누림의 중심인 포도주가 떨어졌다(2:3).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 끝날 때 그 생명의 기쁨도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포도주가 떨어질 때 결혼 잔치의 기쁨은 사라진다. 이것은 생명의 누림이 끝났을 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도 끝났음을 의미한다. 당신이 누리고 있는 기쁨이 어느 정도이든지 당신의 생명이 끝날 때 인간으로서의 모든 즐거움도 사라진다. 당신의 아내, 당신의 남편, 당신의 부모, 당신의 자녀, 또는 당신의 직장이 얼마나 좋든 간에 당신의 생명이 끝나면 그 기쁨은 사라진다. 포도주가 다 소비될 때 포도주에 달려 있는 잔치는 끝이 난다. 당신의 모든 즐거움은 당신의 생명에 달려 있다. 당신의 생명이 끝나게 되면 당신의 즐거움도 끝이 난다. 당신에게 있는 결혼 잔치가 어떤 것이든 생명이 끝날 때 연회도 끝나고 기쁨도 사라진다. 이것이 그날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께서 가나에 가시기 전 포도주가 떨어질 것을 아셨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포도주는 우연히 떨어진 것이 아니다. 주 예수님은 포도주가 다 소비될 것을 미리 아셨고, 죽음을 생명으로 변하게 하는 생명의 원칙을 확립하시기 위해 가나에 가셨다. 결혼 잔치에 오셔서 그분은 그 상황을 다루고 치료하셨다. 엘리사가 더러운 물을 새롭게 함으로 고쳤던 것과 같이(왕하 2:19-22) 주님은 사람의 상태 안에 있는 죽음을 치료해서 생명으로 바꾸셨다.
돌 항아리 여섯 개
기적을 행하기 전에 주님은 사람들에게 물로 항아리를 채우라고 말씀하셨다(요 2:6-7). 돌로 만들어진 이 항아리는 여섯 개였다. 사람이 창조된 것은 여섯째 날이기 때문에 6이란 수는 창조된 사람을 나타낸다(창 1:27, 31). 그러므로 여섯 개의 돌 항아리는 여섯째 날에 창조된 자연 그대로의 사람을 의미한다. 있는 사람은 무엇인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인 돌 항아리일 뿐이다. ‘돌 항아리’인 우리는 약하고 상하기 쉬운 사람들로 가득 찬 갈대의 땅인 가나에 있다. 우리는 약하고 상하기 쉬운 가나에 있는 돌 항아리들이었다.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움
주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마다 물로 채우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항아리들을 가득 채웠다(2:7).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서 물은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생명을 나타내고(요 4:14, 7:38) 다른 곳에서는 죽음을 나타낸다(창 1:2, 6, 출 14:21, 마 3:16). 창세기 1장과 출애굽기 14장에서처럼 물은 죽음을 의미하고, 이 사례에서도 물은 죽음을 의미한다. 모든 돌 항아리가 물로 가득 찼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의 포도주
놀랍게도 주님은 이 죽음의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요 2:8-9). 이 표적은 주 예수님께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실 수 있을 뿐 아니라(롬 4:17),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주님께서 기적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것은 그분께서 우리의 죽음을 생명으로 변하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실 때 우리 인생의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는 결코 다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거듭난 이래로 영적인 누림이 있는 생명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결코 끝나지 않을 영원한 결혼 잔치를 갖게 될 것이다. 이 잔치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있지 않고 거듭남으로 얻은 새 생명 안에 있다. 잔치 주관자가 새로 나온 포도주가 이전 포도주보다 더 좋다고 했듯이(요 2:9-10), 거듭남으로써 얻은 생명이 원래의 생명보다 훨씬 좋다. 나쁜 포도주로 상징되는 우리의 이전 생명은 훨씬 열등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처음이 아닌 나중에 가장 좋은 것을 주셨다. 창조된 사람의 첫 번째 생명은 낮은 생명이고, 두 번째의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이 가장 좋은 생명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기 때문에 가장 좋다. 따라서 우리의 기쁨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죽음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그 문제를 주님께 가져가면 주님께서 그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실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부부가 결혼 생활을 할 때 생명이 모자라게 되는 지점까지 도달할지 모른다. 그들은 결혼 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주 예수님께 자신을 열 때 주님께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실 것이다.
성경에서 어떤 것에 대해 첫 번째로 언급하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해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있는 첫 번째 표적은 다음에 이어지는 모든 표적에 대한 원칙, 즉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것은 생명의 원칙-죽음을 생명으로 바꿈-을 확립한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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