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의 비밀 (2)

거듭남의 비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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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의 비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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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58호

거듭남의 비밀(2)  

니고데모는 그가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모태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다(요 3:4). 그는 주님의 말씀을 오해했다. 그때 주 예수님은 육체로 난 것은 육체라고 말씀하셨다(3:6).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다. “당신이 몇 번이나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하더라도 여전히 육체일 뿐이다. 육체로 난 것은 육체이다. 니고데모, 당신은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라도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그와 같은 방법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고 다시 젊어진다하더라도 또다시 육칠십 년이 지나면 현재의 당신과 똑같아질 것이다. 당신에게 그러한 거듭남은 필요하지 않다.” 니고데모는 시간에 있어서 다시 태어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면에서 다른 또 하나의 태어남이 필요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물과 그 영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 3:5)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침례자 요한은 자기는 사람들을 물속으로 침례를 주지만 성령 안에 침례를 주시는 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물’은 옛창조에 속한 사람들을 장사지내고 끝내는 침례자 요한의 사역에서 중심이 되는 표적이다. 그의 사역 안에서 침례자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기 위해 왔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타락하였으며, 장사지내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회개했던 사람들은 물로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그들이 옛창조에 속한 타락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요한의 사역이다. 더 나아가 요한은 사람들에게 그의 사역은 주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이 침례자 요한의 사역에서 중심되는 표적인 것처럼, ‘그 영’은 사람들을 새창조 안으로 태어나게 하는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되는 것이다. 이들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인 ‘물과 그 영’이 합해질 때 거듭남의 전체적인 개념이 된다. 새로 태어나는 것인 거듭남은 옛창조에 속한 사람들을 그들의 모든 행위와 함께 끝내고(termination)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창조 안에서 발아되는 것(germination)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한의 사역인 물로써 끝나고 예수의 사역인 그 영으로써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침례자 요한의 사역을 가질 수 있는가? 회개함으로써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아무런 쓸모없는 타락한 사람임을 고백하면서 회개하는 것은 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요한의 사역을 전한다. 우리가 죄와 회개에 대해 많이 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회개에 이어 모든 사람들은 주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고 태어나기 위해 주님의 생명의 사역을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을 얻기 위해 회개와 믿음이 둘 다 필요하다. 회개하는 것은 침례자 요한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믿는 것은 주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우리는 모두 이 거듭남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영을 낳음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신성한 영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으로 우리 사람의 영을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 즉 신성한 생명을 얻음은 절대적으로 우리의 영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우리의 영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우리는 우리 속 깊은 곳에 사람의 영이라는 특별한 기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그분은 우리의 영을 만드셨는데, 이는 어느 날 우리가 이 영을 사용하여 그분을 접촉하고 우리 존재 안으로 그분을 받아들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람의 영의 기능은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이다. 거듭남은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영 안의 문제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은 “그러나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 그들은 혈통에서나 육체의 뜻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어느 부분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 우리의 영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오직 우리의 영만이 (하나님의) 영을 만질 수 있다. 오직 영만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날 수 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절대적으로 우리 영 안의 문제이다. 당신이 청명한 생각과 합당한 감정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은 다른 한계 안에 있는 것들이다. 거듭남은 우리의 영의 한계 안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영은 거듭남이 발생하는 영역이다. 거듭나기 위해서 당신의 생각, 감정, 의지를 사용하지 말라. 단순히 당신 자신을 열고 당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고 당신의 영 안의 깊은 곳에서부터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믿으라. 만일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즉시 영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만지실 것이다. 이것은 빠른 시간에 발생하며 아마 일 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영 안의 깊은 곳에서부터 당신 자신을 열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영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 안에 들어오실 것이며 당신은 거듭나게 될 것이다. 산파(産婆)나 간호사나 의사가 필요 없다. 당신이 “주 예수님,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때 당신은 당신의 영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거듭남으로 주님과 한 영됨   

일단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나면 우리의 영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게 되며 두 영이 연합된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6절의 “그 영께서 직접 우리의 영과 함께”와 같이 우리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신성한 영이 연합되어 연합된 영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과 한 영 됨(고전 6:17)은 이 연합된 영 안에서이다. 이 영이 연합된 영이기 때문에 신약의 많은 곳, 예를 들면 로마서 8장 4절부터 6절까지와 10절, 갈라디아서 5장 16절과 25절, 에베소서 4장 23절과 6장 18절의 ‘영’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신성한 영을 가리키는지 우리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지는 말하기가 어렵다. 이제 우리 안에서 두 영이 하나로 연합되었다. 이 연합은 거듭남으로부터 온다. 거듭남은 우리 안에서 새 영을 낳으며(겔 36:26) 하나님의 신성한 영을 거하게 하며 연합되게 한다. 이제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가진 이 영은 우리의 새 존재이며 우리는 이에 따라 살고 행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육체를 따라 행해서는 안 된다(갈 5:16, 롬 8:4).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 또한 정확하다(벧전 1:23). 그러나 흑백의 문자 자체는 우리를 거듭나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오직 그 영이신 말씀만이 이것을 할 수 있다(요 6:63). 하나님, 말씀, 그 영 모두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그 영이심에 틀림없다. 하나님 자신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영이시며, 말씀 또한 그 영이심에 틀림없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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