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르신 하나님과 목마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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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60호

목마르신 하나님과 목마른 사람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사례는 그리스도께서 참만족이심을 계시해 준다. 니고데모가 순수한 혈통의 유대인인 반면에 사마리아 여인은 혼혈인이었다. 그녀에 관련된 모든 것이 황폐함 뿐이요 어느 것도 순수하거나 선하지 않았다. 니고데모의 이름은 알려졌지만, 누구도 사마리아 여인의 이름을 모른다. 그녀는 비속하고 비천했기 때문에 성경은 그녀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유별남을 발견할 수 있는데, 심지어 물을 길으러 우물로 나온 것조차도 유별났었다. 중동(中東)의 관습에 따르면 여인들은 정오가 아니라 오후 늦게 물을 길으러 가곤 했다. 해가 질 무렵 여인들은 무리를 지어서 물을 길으러 오곤 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여인은 정오쯤에 혼자 물을 길으러 왔다. 왜 그녀는 이렇게 했을까? 왜냐하면 그 여인은 평판이 나빴으므로 아무도 그녀와 사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 걸어오거나 비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있게 되는 때인 늦은 오후에는 감히 올 수가 없었다. 이 여인은 빈궁했고 부도덕했다. 그녀는 다섯 남편을 두었었고, 지금도 자기 남편이 아닌 자와 살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주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것을 알았으므로 아무도 자기를 보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그처럼 한적한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여자임

성경의 예표와 비유에 따라 여자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로, 여자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은 결코 홀로 설 수 없다. 그는 반드시 사람을 만드신 분이시요 남편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사 54:5). 하나님 앞에서의 당신의 위치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나님 앞에서의 내 위치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혼자 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의지할 하나님이 필요하다. 여자란 홀로 서 있을 수 없는 사람을 상징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게끔 창조되었다. 여자는 또한 연약함을 상징한다(벧전 3:7). 우리 인간은 반드시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요,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도 의존적으로 지어졌으므로 주님을 의지해야만 한다. 여자의 의미는 또한 내적인 사모함과 목마름을 내포한다. 물론 남자에게는 돕는 배필인 아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자는 남편을 더욱더 필요로 한다. 여자는 늘 만족을 얻고픈 동경과 갈망을 안고 있다. 남자와 여자 모두의 인간 본성 안에는 만족을 바라는 내적 갈증이 늘 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찾도록 그런 목마름을 창조하셨다. 항상 당신은 목마름을 느끼고 있으며, 항상 내적 결핍을 느끼고 있다. 이런 것은 당신이 하나의 여자라는 표시이다. 당신이 느끼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필요성, 의존과 약함에 대한 느낌, 만족을 바라는 목마름 등은 모두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여자라는 것을 가리킨다.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만 했음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만 했다.”(요 4:4) 의심할 것 없이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영원 전에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미리 알게 되었고 미리 정하여졌다(롬 8:29). 역사에 따르면, 어느 유대인도 사마리아를 통행하지 않으려 했다. 기원전 700년 경에 아시리아인들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바벨론과 다른 이교도 국가의 백성을 사마리아 도시들에 이주시켰다(왕하 17:6, 24). 그때로부터 사마리아인들은 이교도들과 유대인들이 섞인 혼혈인들이 되었다. 그들은 모세오경을 갖고 있으며 구약의 그 부분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했지만, 결코 유대인들에 의해서 유대 민족의 일부라고 인정된 적이 없었음을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비록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결단코 통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주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 때문에 그 지역을 통과하셔야 했다. 주님은 정오에 그 부도덕한 여인이 우물에 올 것을 아셨다.

하나님의 목마름

“예수님께서 수가라는 사마리아의 한 동네에 가셨다. 그 동네는 야곱이 그의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며,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여행에 지치시어 우물가에 그대로 앉으셨는데, 때는 제육 시쯤이었다.”(요 4:5-6) 야곱의 우물에 먼저 온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 죄인이었는가, 아니면 구주이셨는가? 주 예수님께서 타락하고 부도덕한 사마리아 여인보다 먼저 그 우물에 가서 그 여자를 기다리셨다. 주 예수님은 그 죄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동안에 목이 마르셨다. 여기에서 목마르신 주님과 목마른 죄인을 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이 목마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의 목마름은 구주께서 목마르시다는 표시이다. 구주께서는 우리에 대해 목마르시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우리가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이 구주에게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종교의 공허함

요한복음 9절부터 14절에서 우리는 종교적 전통의 공허함과 생명의 생수의 충만함 사이의 대조를 본다. 사마리아 여인은 주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야곱 조상께서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그분 자신과 그 자손들과 가축이 이 우물물을 마셨는데, 선생님께서 그분보다 더 위대하십니까?”(12절) 사마리아인들은 야곱을 최고 큰 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마리아 여인도 역시 야곱의 우물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종교적 유산이 늘 최고로 여겨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종교의 ‘물’은 종교적인 사람들의 목마름을 결코 해소시킬 수 없다.

마실수록 목마르게 하는 물

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13절). 여기에서 ‘물’이란 물질적인 것들을 누림과 세상 환락을 즐기는 것을 상징한다. 그런 것들 중 어느 것도 사람 속 깊은 곳에 있는 갈증을 해소시킬 수 없다. 사람이 이러한 물질적이며 세상적인 ‘물’을 제아무리 마신다해도, 그는 다시 목마를 것이다. 사람이 이런 ‘물들’을 많이 마실수록 더욱더 그 목마름은 더해진다. 예컨대, 어떤 이들은 예금 계좌에 일만 달러를 저축하길 갈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후에는 십만 달러를, 또 그다음에는 백만 달러를 저축하고 싶어한다. 당신이 이 땅의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더 당신은 목마르게 된다. 어떤 종류의 세상적인 물로도 당신의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비록 그 사마리아 여인이 다섯 남편을 두었었고, 이제도 자기 남편이 아닌 남자와 같이 살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그녀의 목마름을 해소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영원토록 만족시키는 단 한 가지 ‘물’이 있으니,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만족시켜 주신다. 그분은 늘 새로우시며, 늘 신선하시다. 그분은 늘 만족시켜 주신다.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요 4:14)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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