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를 얻는 길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요 4:14) 생수가 좋긴 하지만 만일 그것을 얻을 길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도 없다. 요한복음 4장 15절부터 26절에서 우리는 생수를 얻는 방법을 볼 수 있다.
다른 남편들을 자백해야 함
“선생님, 이런 물을 나에게 주시어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에 물을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여 주십시오.”(요 4:15)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생수를 달라고 청했을 때 그분은 꾸짖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그녀의 죄들을 철저히 자백하라고 일러 주셨다. “가서, 그대의 남편을 불러오십시오.”(요 4:16) 마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나는 네 남편을 원한다. 네가 나에게 생수를 청하니 나는 네게 네 남편을 청한다. 우리 서로 교환하기로 하자. 너는 생수의 대가로 네 남편을 가져오라.” 이 말씀이 의도하는 바는 그녀가 죄들을 회개하도록 그녀의 부도덕한 과거 이야기로 그녀의 양심을 만지려는 것이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은 그녀가 다섯 남편을 두고, 또 남편 아닌 자와 함께 사는 것과 같은 많은 그릇된 일들을 하게 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가 발견한 삶의 종류였다. 그녀는 자기를 만족시켜 줄 육체적인 일들을 구했으나 불만족만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 여섯 남자는 결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대표한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남편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약혼시켰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참남편이시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다섯 남편과 그 외에 다른 한 남자를 가졌다. 그녀의 행실이 나쁘고 부도덕한 이유는 그녀가 목말랐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많은 남편들이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므로 불만족한 채로 남아 있었다. 처음 남편이 자기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두 번째 남편에게서 만족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둘째 남편도 역시 그녀의 내적인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셋째 남편과 결혼했으나 그 남편도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넷째, 다섯째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많은 남편들 안에서 땅에 속한 물을 아무리 많이 마셨을지라도, 여전히 그녀는 목마름을 느꼈다. 물질적이고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의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오직 주 예수님만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시킬 수 있는 생수를 갖고 계신다. 그녀의 남편들에 관한 주님의 말씀이 그녀의 양심을 만졌기 때문에 즉시 그녀는 경배의 문제로 화제를 전환했다. 비록 그녀는 그같이 부도덕한 여자였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관해 말했다. 이것은 종교의 현주소를 알려 준다. 사람들은 종교에 관해 토의하면서도 여전히 부도덕함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여인은 죄들을 자백하지 않고서 화제를 남편들로부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 바꿨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경배하였는데, 여러분은 경배해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요 4:20) 이 여인이 남편의 문제에서 경배의 문제로 화제를 전환했을 때, 주 예수님은 생수를 얻을 수 있는 합당한 방법을 계시하기 위한 기회를 포착하셨다.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함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나를 믿으십시오. 이 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데서 여러분이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 것에 경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에 경배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고 있는데, 바로 지금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경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요 4:21-24) 이 말씀이 주어진 것은 영 하나님(God the Spirit)을 접촉할 수 있도록 그녀의 영을 사용할 필요가 있음을 그녀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이었다. 그녀의 영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생수를 마시는 것이요, 생수를 마시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찾는 참된 경배
예표에 따르면, 하나님은 (1) 하나님께서 그분의 처소를 위해 선택하신 장소에서(신 12:5, 11, 13-14, 18) (2) 제물들로(레 1장-6장) 경배를 받으셔야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처소를 위하여 선택하신 곳은 오늘날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인 사람의 영을 예표한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엡 2:22)라고 되어 있는 개역 개정은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라고 번역되어야 함). 제물들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할 때 드리는 모든 제물들의 성취요 실재이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영 하나님을 접촉하라고 그녀에게 가르치셨을 때, 그것은 그녀가 특정한 장소 대신 그녀의 영 안에서, 제물들 대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 하나님을 접촉해야 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실재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요 4:25-26) 이제는 모든 그림자들과 예표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분을 접촉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과 또한 그분을 접촉하는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영의 문제라는 것을 일러 주셨다.
그분이 “때가 오고 있는데, 바로 지금입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시대가 바뀌었음을 뜻한다. 과거에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이름을 두시려고 세우신 특정한 곳에서 그분을 경배하라고 명하셨다(신 12:5).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유일한 장소로 가야만 했다. 그것은 하나의 예표였다. 이제 시대는 바뀌었고 그 예표는 이루어졌다. 예표적으로 말해서, 경배의 장소는 더 이상 어떤 장소일 수가 없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세우시는 곳인 사람의 영임에 분명하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을 경배하기 위한 유일한 장소는 어디인가? 그곳은 바로 우리 사람의 영이다. 에베소서 2장 22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처소는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왜 하나님은 고대에 그분의 백성들이 한 곳에서만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고 정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께서 택하신 곳 외의 장소에서 그분을 경배하는 것을 결단코 허락하지 않으셨다. 만일 누가 다른 곳에서 그분을 경배했다면,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의 하나는 손상받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를 지킬 수 있는가? 바로 우리의 영 안에서이다. 우리는 모두 생각과 이해와 가르침과 교리와 관념 안에서 서로서로 다르다. 어떻게 우리가 서로 다른 관념들과 방법들과 견해들에 따라서 늘 하나일 수 있겠는가? 반드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 영으로 돌이켜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영으로 돌이킬 때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 모두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인 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즉 그분을 접촉하는 곳이다. 우리가 영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때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생수로 마신다는 뜻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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