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실인의 서원 (2)- 나실인의 사중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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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104

생명의 흐름 105호

나실인의 서원(2) – 나실인의 사중 헌신

 

포도주를 마시지 않음

민수기 6장에서 나실인의 헌신에는 네 가지가 아주 분명하게 언급된다. 첫째로 나실인은 포도에서 난 어떤 것도, 심지어는 껍질까지도 마시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 예표론에서 포도주나 포도에 속한 것은 땅에 속한 기쁨이나 세상적인 즐거움을 상징한다. 우리가 제사장 체계를 실현하려면 땅에 속한 모든 기쁨으로부터 분별되어야 한다. 세상적인 즐거움으로부터 분별된다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세상 즐거움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유혹과 땅에 속한 기쁨과 세상적인 오락 때문에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참된 제사장 체계를 실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포도에 속한 것을 마시는 한, 제사장 체계에 대해서는 망치는 것이다. 거듭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들과 왕들로 거듭났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이 땅에 속한 즐거움의 포도에 의하여 망쳐졌다. 그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오늘날이 타락의 시대임을 깨달아야 한다. 제사장 체계의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포도에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완전히 분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님의 회복은 땅에 속한 기쁨과 세상적인 즐거움으로부터 완전히 분별된 제사장 체계를 통해서만 우세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것에 동참할 때마다 우리는 끝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우리 속에서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자녀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더 이상 제사장은 아닌 것이다.

 

머리를 깎지 않음

나실인의 헌신의 두 번째 항목은 그의 머리를 깎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사장 체계에 있는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여러분을 특이하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나는 아주 기쁘겠다. 나실인이 그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금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린도전서 11장 14절은 긴 머리는 남자에게 부끄러움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영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다. 긴 머리는 여자에게는 영광이지만 남자에게는 부끄러움이다. 나실인은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부끄러움을 참아 내는 사람이다. 긴 머리를 갖는 것은 자기 영광으로부터 분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는 죽음에 놓여졌다. 그러므로 자의식이나 자기 의나 자기 영광도 없다. 자기 영광에 속한 것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제사장 체계 안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의 간증을 위하여, 그분의 목적을 위하여 수치를 참아야 한다.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부끄러움을 참는 자가 되라. 히브리서 13장 13절은 우리에게, 진영 밖으로 나가서 그분의 비난을 짊어지라고 말한다. 이것은 주님의 수치를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쁜 이름이나 악한 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만일 우리가 부끄러움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담대하지 못하다면 제사장 체계 안에 있을 수 없다. 제사장이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즉 자기 영광이 없는 사람이다. 참된 제사장이 되는 것은 다소 다른 사람들의 경멸을 받는 원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영광을 부인하고 비난을 참음으로써 제사장 체계를 위한 참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천연적인 애정을 멀리함

나실인의 헌신에서의 셋째 항목은 죽은 것에 의해서, 특별히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의 죽음에 의해 부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천연적인 애정을 대표하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은 우리를 죽게 만드는 도구일 수 있다. 아주 쉽게 죽이는 우리의 천연적인 애정으로부터 분별되어야 한다. 주님과 우리의 일은 다만 주님과 우리의 일이다. 그것을 천연적인 애정에 속한 어떤 것과 관련시켜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관련시킨다면 우리는 즉시 죽게 된다. 왜 오늘날 구원받고 거듭나서 제사장과 왕으로 태어난 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기능을 잃고 있는가? 그것은 다만 이 세 가지, 땅에 속한 기쁨이나 오락, 자기 영광, 타고난 애정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참된 제사장 체계의 위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 모든 일들로부터 분별되도록 우리 자신을 자발적으로 주님께 헌신해야 한다.

 

죽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음

주님의 말씀은 영적인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분명하다. 민수기 6장 9절은 만일 어떤 사람이 갑자기 여러분 곁에서 죽으면 여러분은 부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그들에 의해서 죽게 된다면 모든 분별의 날들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애정을 이겨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날 교회에서 우리 옆에 서 있던 한 형제가 갑자기 죽는다. 이것은 그가 육체적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그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로 하여금 그의 죽음을 당신에게 전하지 못하게 하라. 사탄은 바로 죽음의 근원이다. 그래서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퍼뜨리기를 좋아한다. 교회생활 가운데 있는 많은 성도들이 한두 명의 죽은 지체들에 의해 죽게 되는 일이 있다. 그런 영적 죽음의 악취를 느끼거나 냄새 맡을 때마다 우리는 달아나야 한다.

땅에 속한 즐거움, 자기 영광, 천연적인 애정, 다른 사람의 갑작스런 영적 죽음을 모두 정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사장 체계가 파괴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오늘날의 상황이 정상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오늘날의 상황이 정상이라면 나실인의 원칙이 적용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타락의 시대를 왕국의 시대로 바꿔놓은 사무엘처럼 우리는 나실인이 되기를 자원해야 하다. 구약 시대를 신약 시대로 바꾸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온 사람은 침례자 요한 같은 나실인이었다. 이 마지막 날 이 시대를 또 다른 시대로 전환시킬 사람들이 또한 있을 것을 나는 믿는다. 오직 나실인들만이 주 예수님을 다시 오시게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에 의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고, 땅에 속한 즐거움과 자기의 영광과 천연적인 애정과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갑작스런 영적 죽음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자신을 분별시키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때 그들은 이 타락의 시대를 왕국의 시대로 전환시킬 오늘날의 나실인들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님을 다시 모셔올 것이다. 우리는 나실인의 이 원칙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기도해야 한다. 오늘날은 나실인의 규정인 옆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들을 주님께 빌려드려야 한다. 주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를 빌려 가실 수 있도록 그분께 우리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나실인의 규정만이 오늘날의 비상 사태에 대처할 수 있다. 주님은 땅에 속한 모든 즐거움과 자기 영광과 천연적인 애정과 갑작스러운 영적 사망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신을 분별할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위트니스 리, 제사장 직분,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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