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영적인 의미(2)
보이는 물체는 보이지 않는 내용을 말하는 것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보이는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과 마찬가지로 한 해의 시작도 영적인 의미가 있다. 보이는 것들과 물질적인 모든 것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것과 영적인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에게는 몸이 있는데, 몸의 목적은 생명을 담기 위한 것이다. 사람의 몸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지만 몸속의 생명은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다. 사람에게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이 있으나 사람의 실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이 죽으면 영과 혼은 떠나지만, 보이는 몸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 죽으면 비록 몸이 남아 있다 해도 그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이같이 사람의 실재는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에 달린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에 달려 있다.
이와 유사하게, 우주 안의 모든 체계도 외적인 형태와 내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형태는 보이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외적이고 보이는 형태는 내적이고 보이지 않는 내용을 말해 준다. 우주 안에서 해와 달과 다른 별들의 체계는 시간과 관련이 있다. 일 년은 365일이 있고, 한 달은 30일이 있으며, 하루는 24시간이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시간의 시스템은 천문학과 관련이 있음을 알고 있고 또 어떻게 시기와 계절이 창조물 가운데 생물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러한 천체가 어떻게 내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과 관련이 있는지 말해 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오직 외적인 형태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당황할 것이다. 그들은 내적인 내용물이 작용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 볼 때, 창세기 첫 장에 있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해와 달과 같은 빛나는 발광체들이 표징과 계절과 날과 해를 위해 있음을 볼 수 있다(1:14). 그리고 성경의 끝인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서는 “그 성에는 그 성을 비추어 줄 해와 달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을 밝게 하며, 그 성의 등이 어린양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린양이 등이기 때문에 해나 달이 필요 없고 해나 달의 비춤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날과 달과 해와 계절이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묘사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해와 달은 단지 상징이요 외적인 형태일 뿐이고 그 내적인 실재는 그리스도이다. 심지어 우리는 구약의 끝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의 말씀을 볼 수 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해가 … 떠오르리니”(말 4:2). 하늘에 해가 있는데 왜 또 다른 해가 떠오를 필요가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있는 해는 외적인 형태로서 보이지 않는 해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빛이시다(요 1:4).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접촉할 때만 참된 빛을 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날과 달과 해와 계절은 비밀스러운 내용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날과 달과 해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회임
왜 하나님은 날과 달과 해에 따라 우주의 질서를 정하셨는가? 과학자들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생물체의 존재와 성장은 날과 달과 해의 순환에 의해 규제받는다고 말한다. 북중국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매년 봄이 심고 씨 뿌리는 때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일 봄에 심거나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농부는 “내년에 씨를 심을 때까지 기다리자.”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우주의 시간 범위가 매우 긴 하루로 되어 있다면 생명체가 존재하고 성장할 기회가 오직 한 번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하루 동안에 생존과 성장이 있다면 생존과 성장이 있을 것이지만, 이 하루 동안에 생존과 성장이 실패한다면 생물체가 생존하고 성장할 또 다른 기회는 없을 것이다. 아주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주 안에서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여러 번의 기회들을 예비하셨고 정하셨다. 만일 우리가 한 해에 실패를 경험한다면 또 다른 해가 있을 것이다. 만일 금년에 우리의 일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내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살아있는 것들뿐만 아니라 사업과 교육과 직업에 관련된 것들에서도 그러하다. 만일 금년에 사업이 잘되지 않았다면 내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만일 금년에 시험에 불합격했다면 실망할 필요가 없다. 내년에 더 많이 공부해서 다시 시험을 치르면 된다. 만일 금년에 직업에서 실패가 있다면 걱정하지 말라. 새해가 오고 있다. 만일 우주의 시간 구조가 오직 긴 한 해로만 이뤄져 있다면 소망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다면 사업에 실패했거나 대학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은 또 다른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내년에도 항상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낙심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기회를 이용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회는 하나님의 크신 기뻐하심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안배하심 가운데 우리는 해마다 기회를 가질 뿐 아니라 달마다 기회를 갖게 된다. 사업하는 사람은 반드시 매년, 매달 결산을 해야 한다. 그들은 매년 말과 매달 말에 수입과 지출의 회계를 정산해야 한다. 사업이 잘되지 않았다면 내년에는 더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늘 있다. 더구나 하나님은 매년이나 매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실 뿐 아니라 날마다 기회를 주신다. 우리가 24시간마다 새로운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진실로 놀라운 일이다. 오늘 잘하지 못했으면 내일 다시 출발할 수 있다. 오늘 실패했다면 밤에는 쉬고 내일 아침에 새로운 기회가 있게 된다. 날과 달과 해는 진실로 의미 깊은 것이다. 대부분 생물체는 매일, 매달, 매년 자란다. 인간도 이러한 규칙에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외적인 것들은 모두 영적인 것들에 관해 말해 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해이시며, 빛나는 발광체이시다. 우리의 생존과 생명 성장을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성장할 기회를 항상 주신다. 어떤 것들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이기게 될 기회가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니다. 날과 달과 해가 바뀜에 따라서 하나님은 매일, 매달, 매년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
매일, 매달, 매년이 새로운 시작임
영적인 생활에서 우리에게는 영적인 날과 달과 해가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를 떠나기 전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위대한 시작이었다. 하나님은 아빕월을 달들의 시작, 그 해의 첫 달로 여기기를 원하셨다(출 12:1-2, 34:18).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새로운 시작으로 지켰는데 그것은 작은 시작이 아니라 위대한 시작이었다. 이 시작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성막 안에서 경배의 체계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민수기도 ‘매달 초하룻날’을 말하고 있는데 그날은 새달에 따라 정해진 때를 가리킨다(10:10, 28:11). 새달은 중간 정도의 시작이다. 한 해의 시작은 큰 시작이지만 달의 시작은 중간 정도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날마다 아침과 저녁에 경배하기를 요구하셨다(레 6:9, 12). 날의 시작은 작은 시작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날과 달과 해는 영적인 의미로 가득했다.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유월절의 실재를 체험한다. 그것은 위대한 새 시작이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우리가 매달 새로운 시작을 하고, 매일 새로운 시작을 갖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을 때 나는 진실로 유월절 잔치를 경험하였다. 그때에 나는 주님을 추구하고 말씀을 읽고 복음을 전하고 재물을 드리려는 열렬한 갈망을 가졌다. 그러나 사람인 우리는 연약하므로 그러한 갈망을 가졌다해도 성공적으로 실행하지 못 하고, 오히려 자주 실패했다. 그 당시 나의 삶을 되돌아볼 때 성경을 읽는 것이 부족했고 기도하는 것이 약했고 복음 전파에 느슨했고 재물을 드림에 신실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많은 때에 나는 기울어 가는 달, 심지어 사라지는 달 같은 한 달의 끝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바로 그러한 순간에 새로운 영적인 달이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전의 체험들은 지나가게 하고 새달의 첫날과 같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달의 첫날부터 나는 성경을 새롭게 읽었고 기도는 누림직했고 복음 전파에 대한 열망이 다시 분발되었다. 나는 새로운 영적인 달의 비춤을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비춤은 몇 주 동안 지속되었고 나의 체험은 달과 같이 보름달(만월)같이 되었다. 그러나 보름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의 영적인 추구가 충만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잃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결국 어떤 시점에 이르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게 되곤 했다. 또다시 성경을 읽고 싶은 갈망과 기도할 힘과 복음 전파에 대한 관심을 상실했다. 이것은 나의 영적인 달이 기울어 가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가 8일이나 10일 정도 되면 달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이 보였다. 빛은커녕 어둠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실망스런 상황 속에서도 새달이 다시 오곤 했다. 그러면 다시 한번 나는 아침에 일어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나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새달에 관한 그런 체험들을 했다고 믿는다.
새달에 대한 체험에 더하여 우리는 또한 새날에 대한 체험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분의 말씀을 읽고 그분과 교통하는 것을 격려하는 주일 메시지를 들을 것이다. 그런 메시지를 들은 뒤에는 하루 종일 마음이 감동되어서 다음 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 부흥을 하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간다. 이러한 아침 부흥의 결과로 우리는 하루 온종일 실패하지 않고 이기는 생명을 누린다. 그러한 격려되는 체험을 가지고 다시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신선한 기도를 하고 주님과 달콤한 교통을 나눈다. 비록 아침에는 실패를 경험하지 않지만 오후에는 약간의 부주의함 때문에 조금 성질을 낸다. 이 작은 실패 때문에 우리는 좀 침체되고 낙심하여 집에 돌아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밤에 쉬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시작을 가질 수 있다. 주님께 기도드리고 주님과 교통을 함으로써 그분의 비추심이 다시 한번 우리 속에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날을 체험하는 것이다.
영적인 일에서 우리 모두는 새날과 새달과 새해를 체험한다. 다가오는 새해의 시작은 우리에게 단지 새날이나 새달을 향하게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영적인 해의 시작을 향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새날이나 새달을 체험하는 것 이상으로 새해를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매년 새해를 경축하지만 결코 새로운 영적인 해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구원받은 지 5년, 10년, 20년이 지난 많은 그리스도인이 연말에는 새 음식과 새 옷을 구입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새해를 맞기 위한 준비로 사업의 연말 결산을 한다. 그들은 새해를 경축하지만 그들 자신은 영적으로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합당한 끝맺음도 없고 새로운 준비도 없고 결국 새로운 시작이 없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필요와 하나님의 목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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