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sion of the Age
잠언 29장 18절은 “이상이 없으면 백성이 제한을 벗어던지나”(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것은 만일 이상이 없다면 백성이 제한을 벗어던지게 되는데, 이는 마치 야생마가 야성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신약에서 가장 뚜렷하게 이상을 언급한 사람은 바울이다.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이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때 “내가 하늘에 속한 그 이상을 거스르지 않고”(19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4절부터 23절까지 바울이 한 말의 앞뒤 문맥을 이해해야 한다. 그가 젊었을 때 유대교에 있는 대제사장으로부터 권한을 받아 많은 성도를 감옥에 가두었고 그들을 죽일 때 찬성표를 던졌다. 또한 각 회당마다 찾아다니며 여러 차례 그들을 처벌하였고, 모독하는 말을 하도록 강요했으며, 그들에 대해 극도로 격분하여 심지어 외국 도시들에까지 가서 그들을 박해하였다. 이뿐 아니라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을 잡는 데 앞장섰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주님은 그를 만나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돋친 막대기에 뒷발질하는 것이 너에게 고통이다.”(14절)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이 “주님, 누구십니까?”(15절)라고 하자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15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주님은 그가 주님을 본 일과 장차 그에게 보여 줄 일에 대하여 그를 사역자와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바울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그를 이스라엘과 이방인 가운데 보내어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들이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에 있는 유업을 받게 하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결국 바울은 “내가 하늘에 속한 그 이상을 거스르지 않고”라고 결론을 맺었다(행 26:4-23 참고). 과거에 유대교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바울이 의지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전통이었다. 그러다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가 주님을 만나고 부르심을 받으며 택함을 입을 때부터 그는 이상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봉사는 그 이상의 통제를 받았다.
시대의 이상에 따라 하나님을 섬김
우리는 시대마다 그 시대의 이상이 있다는 것과 그 시대의 이상에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에 분명해야 한다. 아담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을 보고 아벨에게서 하나님의 구속의 길을 보고, 에노스에게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과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하나님의 풍성을 얻고 누리는 것을 보며, 에녹에게서는 구속을 받고 구속의 길을 가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보고, 노아에게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역하여 방주를 건축함으로써 그 시대의 필요에 부응했음을 본다.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으로 의롭게 됨과 믿음에 의해 사는 것과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서 생활함을 볼 수 있고, 이삭에게서 은혜의 상속과 안식과 누림을 볼 수 있으며, 야곱에게서 하나님의 선택과 생명의 변화와 생명의 성숙을 볼 수 있고, 요셉에게서 생명의 성숙으로 인한 다스림의 방면을 볼 수 있다. 이어지는 모세와 아론과 여호수아와 사사들에게서도 우리는 다른 방면들을 볼 수 있다. 사무엘에게서 우리는 자원하여 드려진 나실인이, 정해진 제사장을 대신하고 사사들의 시대를 끝내며, 왕국 시대를 가져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상이 있는 사람을 좇아 섬기는 것이 곧 이상 안에서 섬기는 것임
신약의 계시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이 이상 안에 있었고 그분의 인도 외에 다른 이상이 없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전통 안에 있었거나 지식 안에 있었다. 가말리엘은 많은 지식이 있고 하나님의 원칙을 알았지만, 그에게는 이상이 없었다. 그의 말은 이상 안에 있지 않았고 완전히 지식에 속한 말이었다. 주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이상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베드로와 그와 함께한 동역자들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베드로에게 한 이상이 있었고, 요한, 야고보, 기타 사도들에게 다른 이상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오직 하나의 이상, 곧 베드로의 이상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이상이 되었다. 바울이 주님의 일을 할 때, 그는 하늘 위에서와 땅 위에서와 낙원 안에서의 이상을 얻었다(고후 12:2-4). 비록 바울에게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바울이 본 것 외에 다른 이상을 본 사람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한 이상 곧 바울이 얻은 이상이 있었을 뿐이다. 매 시대마다 오직 하나의 이상이 있다는 이 일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쟁론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 시대마다 오직 하나의 이상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계시한다. 아벨의 때에 가인이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고 절이나 사원을 짓지 않았으며 그가 아벨과 함께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음에도, 아벨은 이상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물을 드렸고 가인은 이상 밖에서 제물을 드렸다. 그러므로 당신이 아벨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벨의 길을 좇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이상 밖에서 가인의 길을 가는 것이다. 에노스의 시대에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은 이상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외했었겠지만 그러한 경외함은 이상 안에 있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은 여덟 사람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800명 심지어 1000명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범죄하는 세대를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나 그들의 섬김은 이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이 노아를 좇아 섬김으로 인해 이상 안에서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다. 왜냐하면 노아가 본 것이 그들이 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아가 본 이상은 방주를 짓는 것이었다.
신약의 원칙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신약의 일은 교회를 산출하고 건축하는 것이다. 이 이상이 바울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바울이 나올 때 베드로의 사역은 지나가게 되었다. 베드로는 노년의 때에 베드로후서 3장 15절부터 16절까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여기십시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 또한 자기가 받은 지혜에 따라 여러분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바울은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들에 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무식하고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잘못 풀이한 것처럼 그 부분도 잘못 풀이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나이 든 베드로까지도 바울의 이상 안에 복종하였고, 바울이 한 말이 구약성경과 동일하게 보배로운 것이며, 믿는 이들이 마땅히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의 이상과 함께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이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바나바는 바울을 섬기는 길로 인도하였지만 나중에 바울과 다른 의견을 주장하였고 그 후 성경은 더 이상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볼로는 성경을 잘 해석하는 사람이었지만 고린도전서 16장에서 형제들과 함께 교회를 방문하라는 바울의 권면에,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습니다.”(12절)라고 말했다. 이 일 후에 성경은 더 이상 그에 관해 기록하지 않았다. 성경은 매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의 이상을 주셨다는 것을 분명히 계시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두 개의 이상이 있었던 시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사도들이 떠난 지금에 와서 사람들은 어떻게 이상을 보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 바울이 없는 지금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우리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가? 전 세계 많은 교회와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상 안에서 섬기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이상 안에서 섬기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이상은 무엇인가?
[위트니스 리, 시대의 이상,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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