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이상(2)
아담의 첫 번째 이상
성경 전체의 계시에 따르면 주님께서 사람에게 이상을 주신 것은 아담부터 시작되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즉, 그가 막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분명하고도 비교적 단순한 이상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를 에덴동산의 두 그루의 나무 앞에 두시고 그에게 “ …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 2:16-17)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이상이다. 이상(vision)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열어 보여 주시는 장면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나무에 관한 명령을 주실 때 아담은 하나의 광경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 주신 이상이다. 그 이상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명나무는 먹고 선과 악의 지식나무는 거절하라고 하신 그분의 의도를 보여 준다. 사람이 생명나무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그 이상 가운데 사는 것이며 또한 그 이상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이상은 성경 전체에서 첫 번째 이상이다. 마지막 이상은 요한계시록 마지막 두 장의 새 예루살렘이다. 이 두 끝 사이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람에게 이상을 주셨다.
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이상
주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오직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만이 역대로 내려온 이상을 계승하고 그 시대의 이상을 가졌다. 그들은 이전의 이상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맞는 이상으로써 주 예수님을 따랐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갈릴리 해변에서 주 예수님이 빛과 같이 그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비추시고 그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빛비춤을 받고 매혹되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마 4:15-16, 18-22). 안드레는 원래 침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요 1:35-40) 이제는 그와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이 유대교를 상관하지 않고, 침례자 요한의 가르침도 원하지 않고 심지어 어부 생활도 그만두고 아버지와 그물을 버리고 단일한 마음으로 주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바울의 이상
우리는 다소의 사울이 참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구원받은 후에 성도들에게 “여러분은 전에 내가 유대교에 있을 때 행한 일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으며, 아주 없애 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또한 나는 유대교 안에서 내 동족 중 많은 동년배들보다 앞서가고 있었으며,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훨씬 더 열정적이었습니다.”(갈 1:13-14)라고 말했다. 사울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었으나 이상이 없었다. 그가 조상의 전통을 위해 열정적이었을 때 누가 이상 안에서 하나님을 섬겼는가? 베드로이다. 베드로가 이상 안에 있었으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이상 안에 있었다. 그러나 사울은 이상 안에 있지 않았으며,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상을 보여 주셨다.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본 이상이 베드로가 본 이상보다 더 전진된 것이다. 우리는, 신약의 베드로에 관한 기록이나 그의 서신에서 삼일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역사해 넣으셔서 우리를 그분의 복사판이 되게 하시며, 모든 사람을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하고 그분과 하나 되게 하시는가를 말한 단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바울은 그 이상을 보았다. 주님은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말하는 ‘나(Me)’는 주 예수님과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을 포함한 단체적인 사람이다. ‘나’라는 글자 속에는 매우 큰 이상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그분의 아들을 내 안에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실 때에”(16절)라고 말한다. 바울이 본 이상은 참으로 깊다. 갈라디아서 시작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1:16).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얘기할 때, 우리는 이것이 삼일 하나님을 포함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삼일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바울 안에 계시하셨고, 바울로 하여금 그분의 지체가 되고, 모든 지체들과 함께 그분의 몸을 조성하며, 그분과 연합하여 커다란 ‘나(Me)’가 되게 하셨다. 바울이 처음 본 이상은 아주 높고, 깊고 비밀스러운 이상이었다. 바울이 보내심을 받은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고(엡 3:8), 삼일 하나님을 그들 안으로 분배하여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사도 요한의 이상–하나님의 이상의 최종 완결
사도 요한이 쓴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현시대를 지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세상의 심판에 대하여 써 내려갔으며, 천년왕국을 언급하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출현을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의 궁극적인 완성이다.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것을 말하였기 때문에 이후에는 더 이상 볼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 완결이다. 새 예루살렘이 나타나는 것이 마지막 광경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에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 무엇을 더할 수도 무엇을 뺄 수도 없다고 말한다(22:18-19). 만약 말씀에 무엇을 더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불 못의 불의 형벌이 더해질 것이다. 또한 성경 말씀에서 어떤 것을 제하여 버리면 생명나무와 생명수와 거룩한 성의 축복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이상이 최종 완결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완전한 이상에 따라 하나님을 섬김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완성한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19세기가 지나갔다. 지난 1900년 동안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겨왔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의 복음서 안에서 계시된 이상, 즉 예수님의 이 땅 위에서의 사역과 관련된 이상을 따라 섬긴다. 어떤 이들은 아무런 이상도 없이 섬기기도 한다. 최신의 이상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후기 서신들의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사실상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쓰인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의 수준에까지 도달해야만 하며, 또한 모든 시대를 포괄하는 계시, 곧 왕국, 새 하늘과 새 땅, 교회의 궁극적인 완성인 새 예루살렘 등을 포함하는 계시에 도달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우리의 이상은 창세기의 아담에 관한 첫 번째 이상으로부터 교회의 체현인 새 예루살렘에 관한 궁극적인 이상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고 오직 이것만이 완전한 이상이다. 오늘날 문제는, 누가 이러한 완전한 이상을 보았으며, 누가 이러한 이상 안에 살고 있는가이다. 지난 1900년 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섬겨 왔지만 그들은 어떻게 섬겨왔는가? 500년 전에 마르틴 루터가 이러한 이상을 보고 이러한 이상에 따라 주님을 섬겼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많은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이 본 처음의 몇몇 광경들에 따라 주님을 섬겨 왔다. 우리 모두가 더욱 넓고 원대한 조망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단지 처음 몇몇 광경을 본 것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 우리는 모든 이전의 광경을 포함하는 마지막 광경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위트니스 리, 시대의 이상,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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