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흐름 48 믿는 이들의 휴거(3)
F. 이기는 이들이 휴거되는 조건들
휴거의 조건이라 함은 우리가 이 이른 휴거를 위해 지불해야 할 요구와 대가를 의미한다. 첫째로 우리는 깨어 있고 항상 기도해야 한다(눅 21:36). 깨어 있고 항상 기도하는 것은 오직 기도만 할 뿐 일하지 않고 잠자지 않고 먹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일을 하는 동안에도 기도하는 영을 갖고 끊임없이 기도함을 말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기도는 우리가 일을 중단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일하는 동안에 기도할 수 없다면 당신의 기도는 그리 참되지 못할 것이고 매우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실행일 것이다. 가장 좋은 기도는 바쁜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또한 동시에 살아 있는 영으로 주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말하고 있을 때에도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는 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며 예비되어야 하는 것이다(마 24:40-44, 눅 12:35-40). 우리는 “주여, 나는 바쁘게 일하지만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여, 나는 여기서 나의 물건들을 깨끗이 하고 그것들을 잘 정돈하지만 나는 여기서 영원토록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여, 나는 휴거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주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예비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 세기에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어떤 교사는 그리스도께서 꼭 그 특정한 시간에 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후 사람들은 깨끗이 목욕하고 흰옷을 입고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합당한 방법이 아니다. 합당한 방법은 정상적인 생활을 사는 것이다. 성경 어느 곳에도 우리가 목욕을 하고 흰옷을 입고 주님을 기다리라고 말한 곳이 없다. 오히려 주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그때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두 형제들이 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 매우 놀랍게도 그들 중 한 사람은 갑자기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사람은 남겨 둠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인간적인 관념을 따라 이해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관심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이 곧 오실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관념을 붙잡고 있다. 아니다! 모든 것은 정상적인 생활에 달려 있고, 살아 있는 영으로 항상 주님을 접촉하는 것에 달려 있다.
세 번째 조건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에서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나에게 그것을 보상으로 주실 것인데, 나에게만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의의 면류관이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준비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님께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나타나심을 사모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나타나심을 사모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할수록 더욱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또 하나의 조건은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계 3:10). 예수님의 증거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핍박을 받을 것이다. 수 세기에 걸쳐서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에 신실했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고 순교당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신실해야 한다. 우리는 전통을 따르지 않고 종교를 주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그분의 인내의 말씀인 주님의 말씀만을 주의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핍박의 고통을 당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에게는 주님의 인내의 말씀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교의 핍박을 인내해야 한다. 우리가 지키는 말씀은 주님의 인내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만일 우리가 첫 번째 휴거에 참여하려면 우리는 하락한 기독교를 이겨야 하며 주님의 일들(Lord’s works)을 지켜야 한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서 주님은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에게 “이기는 이와 나의 일을 끝까지 지키는 이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위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도 로마 가톨릭교회가 주님의 일들을 부인했다는 사실을 논박할 수 없다. 주님의 일들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그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어떤 면에서 심지어 이것도 부인한다. 왜냐하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의 죽으심을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사람들에게 어떤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돈을 기증하고, 스스로 잘 처신하고, 심지어 고난을 받으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함으로써 로마 가톨릭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구속을 위한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의 일을 저버렸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또한 어떤 면에서 주님의 부활을 부인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철저하게 주님이 이루신 일들을 망각해 버렸다. 천주교의 교리는 심지어 여러분이 드린 물질적인 헌금에 의하여 어떤 친척이 연옥에서 보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이루신 것을 무시하는 하나의 예이다.
Ⅱ. 믿는 이들의 대다수의 휴거
이제 우리는 대다수 믿는 이들의 휴거를 보기로 한다. 믿는 이들의 대다수가 휴거되는 때는 마지막 나팔, 즉 대환난이 거의 끝날 무렵인 일곱째 나팔의 때일 것이다(고전 15:52, 살전 4:16, 계 10:7, 11:14-15). 이것은 믿는 이들의 대다수가 대환난의 대부분을 통과할 것을 강하게 증명한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이들이 대환난 전에 전부 휴거되리라는 가르침은 절대적으로 성경을 따른 것이 아니다. 믿는 이들의 대다수의 휴거는 불법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후가 될 것이다(살후 2:1-4).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우리에게 믿는 이들의 대다수의 휴거가 대환난의 끝이 될 것임을 말하는 데 강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 부분의 말씀은 성도들이 휴거되기 전에 불법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살후 2:4). 이 우상숭배는 대다수 믿는 이들의 휴거 전에 일어날 것이다.
대다수 믿는 이들의 휴거는 ‘이 시대가 종결될 때’가 될 것이다(마 13:39). 이 시대의 종결은 대환난의 끝이다. 마태복음 13장 39절에 의하면 이때가 추수의 때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한 수확물을 산출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씨를 뿌리러 오셨다. 이 수확물은 이 시대의 종결될 때에 추수될 것이다. 이 시대의 종결은 마지막 삼 년 반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성의 재건축으로부터 시작하여 70이레의 기간이 정해졌다. 처음 69이레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까지로서 483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는 긴 간격이 있다. 결국 그 간격이 끝나게 될 때 마지막 이레, 즉 마지막 7년이 시작될 것이다. 이 마지막 이레의 마지막 반이 십자가로부터 대환난의 끝까지에 이르는 신약 시대의 완성이 될 것이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70번째 이레의 시작과의 간격이 얼마나 긴가를 모른다. 그러나 다니엘서 9장은 이 시대의 종결이 마지막 이레인 7년이 될 것임을 분명히 계시하고 있다. 이 시대의 종결은 이 7년의 마지막 반이 될 것이다. 이 3년 반의 끝 무렵에 성도들의 대다수가 휴거될 것이다. 그러나 이기는 이들은 마지막 3년 반에 앞서 어느 시기에 휴거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 계시록 라이프 스터디,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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