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쁨만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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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71호

주님의 기쁨만 구하라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이겠습니까? 혹은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닙니다.”(갈 1:10)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입고 살든지 몸을 떠나 살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큰 뜻을 품고 있습니다.”(고후 5:9)

모든 믿는 이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주님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닙니다.”(갈 1:10)라고 말했다. 이 말은 한 면으로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그같이 속히 떠났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몹시 아픈 것을 나타내고 또 한 면으로는 주님을 향한 그의 엄숙한 태도를 나타낸다. 바울이 처음에 갈라디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는 그들에게 주님의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는 것이요 율법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님을 말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고, 또한 그들은 바울을 매우 사랑했다. 그들은 자기의 눈이라도 빼어 바울에게 주기를 원할 정도였다(갈 4:15). 그러나 그 후에 어떤 무리가 들어와서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단순히 믿음이나 은혜만으로는 부족하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3:1-3).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에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심지어 우리 자신이나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1:8)라고 말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그 무리들에게 깊이 미혹되어 바울이 이 복음의 진리에 대해 변론할 때 그들은 바울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이겠습니까?”(1:10)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제시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습니까?”(4:16)라고 말했다. 우리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다. 만일 바울이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양보하여,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율법도 필요하고 자신의 행위도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주님의 복음의 진리를 절대적으로 지키지 않았다면, 갈라디아 사람들의 기쁨을 얻었을 것이고, 여전히 그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며, 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는 이유

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그 당시 관원 중에 주님을 믿는 사람이 많았지만 드러나게 말하지 못한 것은 바리새인들에게 출회를 당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12:42)임을 보여 준다. 그들은 공개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용기가 없었다. 그들의 병은 곧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한 것이었다(43절).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 있지 않는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어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이름도 공개적으로 부르지 못하고, 자기가 그리스도인인 것도 공개하지 못하고, 식사 시간에 감사 기도도 하지 못하고, 기도 생활도 오랫동안 하지 않았고, 성경 읽는 생활도 오랫동안 하지 않았고, 집회도 오랫동안 참석하지 못했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누가 그를 비웃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그가 맹신한다고 누군가 말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그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당신에게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해서도 주님을 기쁘게 함

주님의 기쁨을 구하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진리에 대해서도 충성을 다한다. 바울은 진리를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의 반대를 꺼리지 않았다. 그는 “내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제시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습니까?”(갈 4:16)라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그는 진리를 굳게 세웠다. 그가 희생을 당할지언정 진리를 희생시킬 수 없었다. 자신은 손실을 당할지언정 진리가 손실을 당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모든 일을 성경적으로 하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했다. 어떤 일이든지 성경적이면 받아들이고, 비성경적인 것은 거절했다. 만일 당신이 진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양보한다면 당신은 사람들의 공격을 덜 받고 사람들의 조롱을 덜 받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진리를 위해 굳게 설 때 그 어려움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에 어떤 형제가 성경 안에 있는 침례의 의미를 발견하고 침례를 받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찬성하지 않았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서는 큰 전쟁이 일어났다. 그가 침례를 받으면 부친의 마음이 상하게 되고 침례를 받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에 충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잠자리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번민할 때 주님은 그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고”(마 10:37)라는 말씀을 주셨다. 여기에서 그는 ‘대가’의 문제에 당면하게 된 것이다. 부모의 기쁨을 구할 것이냐, 하나님의 기쁨을 구할 것이냐? 주님께 감사를 드리자. 결국 그는 침례를 받았다. 이 형제의 일은, 주님의 기쁨을 구하려면 주님의 진리에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함을 설명한다. 바울이 만일 그때 갈라디아 성도들과 조금이라도 타협하거나 조금이라도 융화되거나, 진리에 대해 절대적이지 않고 몇 마디만 바꿔 말했어도 그들의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원수가 될지라도 그들에게 진리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잠언 23장 23절은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마라.”고 말한다. 진리는 사는 것이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주님의 기쁨을 구하고 진리에 굳게 서려 한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당신이 만일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았다면, 절대적으로 순복해야 한다. 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의 기쁨만을 구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가 흐려지는 것이다. 진리는 다만 사는 것이요 팔아서는 안 된다. 또한 진리는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 진리는 집의 기둥과도 같은 것이다(딤전 3:15). 창문은 작은 것을 크게 할 수도 있고 큰 것을 작게 할 수도 있지만, 기둥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기둥은 한 치도 이동시킬 수 없으며, 한 치도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없다. 또 한 치도 구부릴 수 없다. 바꿔 말해서 진리는 절대로 변할 수 없다. 우리가 진리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고 순복하지 못할 때, 우리가 자신을 정죄하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한다 해도 절대로 자신의 그러한 이유를 핑계로, 우리의 이해관계를 핑계로, 진리를 한 치라도 낮출 수 없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 앞에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주님의 기쁨을 구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언젠가 이 길을 갈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해 이 길에서 넘어졌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역사를 해 주신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사람의 영광에서 나올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우리에게 주님의 기쁨을 구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옵소서.

 

(워치만 니, 전집 2집 17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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