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의 원칙
첫 번째보다 두 번째를 선택하심
성경의 여러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이 모두 두 번째요, 첫 번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첫 번째 것은 땅에 속했고 두 번째 것은 하늘에 속했음을 말한다. 첫 번째 것은 혼에 속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영에 속한 것이다.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항상 두 번째를 택하신다는 것은 기묘한 것이다. 이스마엘은 큰 아들이요 형이고 이삭은 동생이지만 하나님은 이삭을 선택하셨다. 에서 역시 장자요 형이고 야곱은 차자요 동생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은 야곱이지 에서가 아니다. 에브라임은 둘째 아들이요 므낫세는 첫째 아들지만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선택하셨다. 밧세바는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첫째 아들을 치심으로 죽게 하셨다. 하나님은 도리어 둘째 아들 솔로몬을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매우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짓게 하셨는데, 그것은 ‘여호와께 사랑을 입었다’라는 뜻이다. 우리의 주 예수님은 육신을 따라 말한다면 이 계열에서 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서 두 번째 것을 선택하시고 첫 번째 것을 선택하시지 않았음을 본다. 하나님은 왜 형을 원하시지 않고 동생을 원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첫 번째 것은 미워하시고 둘째를 택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믿는 이들을 이같이 대하실 뿐 아니라 죄인에 대해서도 이와 같으시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의 장자들을 위하여 문지방과 문설주에 피를 바르라고 하셨는가? 왜 첫 번째 아들은 위험에 처하였고 둘째 아들은 그렇지 않았는가? 왜 성경에서는 처음 난 소와 양은 대속해야 하고 대속하지 않은 것은 그 목을 꺾어야 한다고 말하는가? 목을 꺾는다는 것은 곧 그들의 중추신경을 꺾는 것이요, 그것은 곧 사망을 뜻한다. 왜 처음 난 소와 양은 대속해야 하는가? 왜 장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미워하시고 특별히 좋아하시지 않았는가? 왜 차자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입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으며 특별히 총애하셨는가? 우리는 성경이 임의대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안다. 성경이 이와 같이 기록된 까닭은, 비록 이 원칙을 사람들이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주 중요한 원칙을 계시하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임의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께서 반복하여 이같이 행하시는 것은 이것이 그분의 ‘길들’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모든 ‘행함’이 다 그분의 ‘길들’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원칙과 길을 배울 수 있다면 하나님과 영적인 일들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크게 진보할 것이다.
두 번째 것을 택하심의 의미
하나님께서 첫 번째 것을 거절하시고 두 번째 것을 택하심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5장 46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자. “그러나 먼저는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 혼적인 사람이고, 그다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몸의 부활을 주로 말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 단락의 성경을 읽는 목적은 몸의 부활에 초점이 있지 않고 영적 원칙에 초점이 있다. 이 성경 구절에 따르면, 먼저는 혼에 속한 몸이 있고 다음에 영적인 몸이 있다. 여기서의 원칙은, 무릇 첫 번째 것에서 나온 모든 것은 혼적이고 두 번째 것에서 나온 모든 것은 영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둘째 것을 택하시고 먼저 있는 것을 거절하신다. 첫 번째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요한복음 3장 3절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3장 6절은 “육체로 난 것은 육체이고 그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 예수님은 거듭남을 말씀하신다. 주 예수님은 사람은 한 번 태어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은 다만 한 번 태어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고, 다시 태어나야만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바로 이어서 주 예수님은 첫 번째 난 것은 육체로부터 난 것이고 두 번째 난 것은 그 영으로부터 난 것임을 설명하신다. 육체로부터 난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첫 번째에 속한 것이다. 두 번째 것은 전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고 성령에게서 난 것이며, 성령으로 태어남으로써 생긴 것이다. 육체로부터 난 것에 포함된 많은 것들을 살펴보자. 이러한 것들은 부모에게서 태어날 때 물려받은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감정, 천부적인 재능, 총명함, 온유, 겸비, 사랑, 화평, 결단력, 인내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 가지고 있는 미덕들이며, 사람들이 볼 때 매우 바람직한 것들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이런 것들을 “육체로 난 것은 육체이고”라는 부류에 포함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거듭난 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육체로부터 난 것들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죄와 더러움은 육체로부터 난 것이므로 마땅히 없애야 하지만, 우리의 온유, 인내, 사랑스러움, 총명함, 천부적인 재능 등은 남겨 둘 수 있으며 하나님에게서 다시 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야야 한다. 주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도 소유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첫 번째 것에서 물려받은 것임을 깨닫고 있는가? 그런 것들은 육체로부터 얻어지며 부모에게서 받은 것임을 깨닫고 있는가? 이런 모든 것은 거절해야 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무릇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라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 두 생명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두 본성을 가진 이는 복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입으로 주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예배도 드리지만, 그가 가진 것이 부모에게서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는 여전히 멸망할 죄인일 것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배운 것, 얻은 것, 됨됨이가 다 나면서부터 있는 것이라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소망이 없고 쓸모가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을 믿고 두 번째 것을 얻었다면, 바로 그는 거듭난 것이고 구원받은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다.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의 차이를 분별함
그리스도인들은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의 차이에 주의해야 하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을 분별해야만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이 매우 혼동되어 있다. 그들은 무엇이 첫 번째 것이고, 무엇이 두 번째 것인지, 어떤 것이 첫 번째 것으로부터 온 것이고, 어떤 것이 두 번째 것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열정이 있고 인내하며 말도 잘 하고, 기도도 잘 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구원하기만 한다면, 그의 생명과 생활과 성품과 일이 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주의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다만 그 좋은 일이 어디에서 나왔으며, 그 근원이 무엇인가를 주의하신다. 당신이 잘하였지만, 어디에서 나온 것으로 잘한 것인가? 당신의 열정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성령에게서 나온 것인가? 이 모든 것의 원칙은 무엇인가? 바로 모든 일에서 그것이 첫 번째 것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두 번째 것에서 나온 것인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첫 번째 것을 거절하시고 두 번째 것만을 인정하신다. [워치만 니 전집 1집 9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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