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통(4)-버가모 교회(1)

교회의 정통(3)-서머나 교회
October 10, 2024

생명의 흐름-131호 

교회의 정통(4)-버가모 교회(1)

성경: 계 2:12-17  

세상과 결혼한 교회

이제 우리는 버가모 교회를 보기로 하자. ‘버가모’라는 단어는 ‘결혼’ 혹은 ‘연합’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에 어떤 전환이 있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역사학자인 기번(Edward Gibbon)은 “만일 그때 로마시 안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죽였다면, 로마는 사람이 없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심한 박해도 교회를 파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탄은 교회를 공격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이제 세상이 교회를 반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인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한번은 꿈속에서 십자가를 보았다. 그 십자가 위에는 “이 표시를 의지하면 승리하리라.”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는 십자가가 기독교의 표시라는 말을 듣고 나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그는 사람들을 권면하여 세례를 받게 했고, 심지어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흰옷 두 벌과 은전 몇 개를 주도록 했다. 이렇게 교회와 세상이 연합하였고, 여기에서 교회가 타락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앞에서 본 서머나 교회는 고난당하는 교회였고, 그 교회에는 주님의 책망의 말씀이 없었다. 여기에서는 버가모와 세상이 연합되어 가장 큰 국교가 되었다. 이것은 사람이 보기에는 진보한 것이었으나,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과 연합하여 교회의 증거가 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나그네이다. 배가 물 위에 있을 수는 있어도 물이 배 안에 있을 수는 없다.

신실한 증인 안디바 

교회가 타락했다고 해서 그 시대에 증거가 아주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교회의 실재는 늘 존재한다. 버가모 교회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가? 주님은 “나는 네가 거하는 곳을 안다. 그곳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셨다( 2:13). ‘권좌’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드로노스’인데 ‘보좌’라는 뜻이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가 처한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신다.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 살고 있으므로 교회가 거기에서 증거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매우 특별한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곧 ‘나의 신실한 증인 안디바’이다. 역사상 이러한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름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안디’는 ‘반대’라는 뜻이고, ‘바’는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신실한 사람 안디바는 모든 것을 반대하며 무엇이든지 반대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고의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편에 서서 모든 것을 반대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람이 순교자이다. 죽음을 당한 이 신실한 사람에 대하여 주님은 “너는 나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있으며, … 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지 않았다.”(계 2:13)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언급되었는데, 하나는 주님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서 선택하시어 주님의 이름 안으로 돌아오게 하신 이들이다. 교회와 다른 종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다른 종교는 그 종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충분하지만, 교회는 주님 자신을 믿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주님의 이름은 곧 주님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그뿐 아니라 이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그분께서 오셨다가 다시 가셨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 가운데 그 이름을 남겨 두셨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잃는다면 우리에게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을 주님의 이름 안에 있는 이들로 나타내는 것이다. 주님은 “너는 … 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의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이 아닌 유일한 믿음, 다른 모든 믿음과는 구별되는 믿음이다. 교회는 철학이 아니다. 자연 과학도, 윤리학도, 심리학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교회가 아니다. 십계명도, 산상 수훈도 교회를 대표할 수 없다. 교회는 일종의 믿음이다. 믿음에 대한 가장 좋은 번역은 사실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 오용하여 훼손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이 믿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발람의 가르침 

“그러나 너에게 몇 가지 책망할 것이 있다. 네가 있는 그곳에 발람의 가르침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발람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의 자손들 앞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놓게 하여 우상 앞에 바친 희생 제물을 먹고 음행을 하게 하였다.”(계 2:14)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버가모인지를 보여 주신다. 버가모는 ‘세상과 결혼하다’라는 뜻이다. 본래 세상은 교회를 반대하였지만, 이제 세상이 교회와 결혼하게 되었다. 거듭 말하지만, ‘교회(ecclesia)’란 부름받아 나온 사람들을 의미한다. 세상과 연합하지 않고 그 안에 있지 않으며 도리어 분별되어 부름받아 나온 이들, 이들만이 교회이다. 발람의 방법은 교회와 세상의 분별을 없애는 것인데, 그 결과는 우상숭배이다. 여기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두 가지 사건은 음행과 우상숭배이다. 아주 특별한 것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언급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함께 두었다. 하나님께서 육체 가운데서 미워하시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이며, 영적인 일에서 미워하시는 것도 이 두 가지이다. 야고보서 4장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4절) 세상과 연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다. 마몬도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마 6:24) 사람은 이것을 섬기지 않으면 저것을 섬기게 된다. 우리가 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마몬과 하나님이 대립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우상들이 다 마몬 때문에 존재한다. 오늘날 살인하거나 우상숭배 하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고 마몬의 세력을 의지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다. 마몬이 곧 우상의 원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몬에서 분별되어 나오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음행이 바로 우상과 연결되고, 세상과 연합하는 것이 바로 돈을 사랑하는 것과 연결된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마몬은 하나님과 대립한다. 우리가 마몬을 섬길 때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발람의 일은 곧 세상을 교회와 연합하게 하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교회를 환영한 것이 바로 발람의 가르침이었다. 발람의 계략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어렵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거대하고 인수가 많은 것만을 생각하며, 거룩함과 정결함은 주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죄악을 용인하고 발람의 가르침을 용인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여기에서 특별히 발람을 언급하신 것은 발람이 돈을 받고 은사를 팔아 버린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약은 여러 곳에서 발람을 언급했다. 베드로후서 2장은 발람이 불의의 대가를 사랑했다(15절)고 말하고, 유다서도 발람이 삯을 위하여 그릇된 길로 달려간 것(11절)을 언급한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초청하여 먼저 사례금 문제를 언급했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또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에게 매년 얼마씩 주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일이 있었으리라고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본래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생활하는 사람들이며, 사람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이방인의 돈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시대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 국고에서 월급을 지급했다. 주후 약 300여 년경에 이러한 일이 이미 시행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월급을 받음으로써 발람의 길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는 발람의 길이 없었다. 만일 여러분이 그 당시의 사도들에게 “여러분은 매달 얼마씩 받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질문인가?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상태가 보편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으면 가서 주님을 위해 일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으면 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워치만 니, 교회의 정통,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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