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믿는 이의 태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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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흐름 75호

사회에 대한 믿는 이의 태도 (2)

빛과 소금 

주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셨다(마 5:13~14).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더 밝고 깨끗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데에 이러한 말씀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빛과 소금이란 무엇인가? 에베소서 5장 13절은 “드러나게 하는 것마다 빛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빛은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은 당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알콜 중독자이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꺼리지 않을 때, 당신은 그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할 수 있다. 혹은 그들이 모두 도박꾼이면서도 그것에 대해 감각이 없을 때, 당신은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게 할 것이다. 당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걸핏하면 싸우고, 화를 잘 낸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의 행위에 참여하지 않고 그들에게 미소만 띤다. 그렇게 하여 당신은 그들에게 그들의 타락을 깨닫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빛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카지노를 태우거나, 깡패들을 검거하거나, 사회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다. 빛이 된다는 것은 먼저 남에게 악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인 당신이 그들의 악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빛은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소금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소금의 기능은 죽은 것을 부패나 악취로부터 보호한다. 여기 이미 죽은 것이 있을 때, 당신은 거기에 소금을 쳐서 더 부패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한다. 이 세상에는 죽은 것들이 많이 있다. 당신은 주위를 돌아볼 때, 모든 종류의 썩어가는 것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이러한 것들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다. 우리의 일은 세상의 모든 부정을 소탕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사회를 개혁하거나 제도를 바꾸라는 사명을 주지 않으셨다. 그분은 다만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권위를 주셨다.

사람들을 먼저 건져냄

세상은 각종 재료들로 건조된 크고 낡은 배와 같다. 나무와 쇠붙이들이 있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온전치 못하다. 각 부품은 썩었다. 키는 없어졌고 배는 좌초했다. 큰 구멍이 나 있어서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다.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당신은 배를 구출해야 할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구출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둘 다 구출할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구출할 시간이 없다면 당신은 어느 것을 구출할 것인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배를 쓸모 없다고 하는 것이다. 배는 너무도 낡았다. 그것을 구한다 할지라도 못 쓸 물건일 뿐이다. 우리는 배를 포기하고 사람만 구출한다. 사람을 건져내고 배는 처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주(船主)이신 주님은 더 크고 새로운 배를 건조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현재의 제도나, 정부나, 사회의 문제에는 해결책이 없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될 때, 옛 질서와 그의 모든 문제들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다만 사람들을 구원할 뿐이다. 사람들이 구원받은 후에 사회에 어느 정도 광범위한 영향을 줄지라도, 우리가 받은 위임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정치

주 예수님은 결코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만약 그분이 자신을 왕이라 선포하셨다면 충성을 맹세할 이스라엘 백성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위치를 거절하셨다. 그분에게 제도를 개혁할 능력이 없어서였는가? 그분이 자신의 나라를 구원할 수 없어서인가? 그분은 할 수 있으셨지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오직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은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넣어 주시는 것이다. 그분은 사회 개혁에 참여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사회 개혁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분은 한 번도 사람들에게 정부를 새로 조직하라고 충동하지 않으셨고, 혁명을 계획하지 않으셨다. 한번은 어떤 유대인들이 그분을 유혹하기 위해 왔다. 그들은 가이사(시이저)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를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그분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라”(마 22:21)고 하셨다. 그분이 뜻하신 것은 그분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결코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으셨다. 그분의 대상은 사람이다. 그분이 원하는 모든 것은 사람을 구원하여 확고하게 얻으시는 것이다.

그분의 사도인 바울은 어떤 일을 했는가? 그는 한 번도 사회 질서를 개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사람의 영적 필요를 해결하고 교회의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 그는 그 당시의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에 로마인들은 그들의 제국을 냉혹하게 다스렸다. 역사(歷史)를 통해, 그들이 노예를 비인간적으로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을 매매하는 것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마음대로 노예들을 때리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했는가? 그는 노예들은 그들의 상전에게 순종하되 좋은 상전뿐 아니라 나쁘고 잔인한 성격을 가진 상전에게도 순종하라고 했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

오늘 하나님은 개개인의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그들이 구원받을 때, 다른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그 문제들은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차별이 없다. 또한 자유인이나 종의 분별이 없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이 없다. 종족과 국가 사이의 뿌리 깊은 적개심조차도 그들 가운데서는 해결된다. 유대인들은 국가적으로 가장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방인을 개로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 온 후, 즉시 다른 문화의 그리스도인과 하나 된다. 모든 긴장과 투쟁은 해결된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일의 순서를 알지 못하고 사회 정치적 개혁에 자신을 바치기 위해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막다른 길이다. 오늘날 모든 문제들은 사람이 질서에서 벗어나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이 틀렸기 때문에 제도가 틀린 것이다. 좋은 제도를 세우더라도 사람의 악한 성질이 여전히 변하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숭고하고 논리적인 철학들이 많이 있지만 타락한 사람의 손 아래서는 아무것도 성취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은 사람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두 번째 오실 때 모든 사회의 악이 쓸려나갈 뿐만 아니라, 이사야서에서 말한 것처럼 동물의 왕국에 있는 적개심까지도 제거될 것이다. 아이들은 뱀과 함께 놀 수 있으며, 사자는 소들처럼 풀밭에서 풀을 뜯을 것이다. 세상의 끝에 주님은 넘어지게 하는 모든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실 것이다(마 13:41). 인종 문제와 국제적인 세력 다툼과 계급 착취와 사상 투쟁과 같은 넘어지게 하는 모든 문제는 뿌리 뽑혀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소망은 주님의 오심에 있다. 주님이 오실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만을 추구한다.

[워치만 니 전집 2집 7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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