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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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흐름 91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입니다.”(엡 1: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임

신약에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 유일한 사도이다.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전, 혹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바울은 특별히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지금은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그리스도에게 많은 아들들이 더해진 것이 교회, 즉 하나의 몸이다. 교회는 완전히 그리스도에게서만 나오며, 또한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고쳐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일단 거듭나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이 된다.

 

그리스도의 몸은 생명과 계시의 문제임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완전히 생명의 문제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생명이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교리를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교리를 모른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거듭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이 된다. 이것은 지식이나 교리와는 무관하며 완전히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을 볼 수 있는가?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의 계시를 얻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해할 수 없다.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완전한 지식이 있을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을 보지 못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만나지 못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볼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로마서 12장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교회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는가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 교회가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는가를 알려면, 로마서 5장부터 8장까지를 이해해야 한다. 5장은 모든 사람이 다 아담과 연합되었으며, 사람의 생명은 다 아담에게서 온 것임을 말한다. 아담의 타락으로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 되었으며 옛사람으로 변했다. 6장은 이 옛사람이 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였다. 그러므로 7장은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육체를 따라 살 수 없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8장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의 일의 최종 목적지

십자가의 일의 최종 목적지는 교회이다. 십자가의 일은 그리스도의 몸에 도달하였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 머물렀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아는 것이다. 십자가의 일은 사람을 약함의 경지로 이끌어가고, 할 수 없음의 경지로 이끌고 가서 옛 창조에 대해 철저하게 실망하게 한다. 이러한 사람은 실제적으로 옛 창조에서 벗어나 새 창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옛 창조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죄로 간주되어야 하고, 옛 창조의 모든 것은 다 십자가의 일을 통해 끝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새 창조로서 옛 창조와 무관하다. 교회의 일을 우리가 이전에 사용했던 방법과 수단과 기능으로써 처리한다면 그 결과는 상당히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옛 창조에 속한 것들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또한 절대로 옛 창조에 속한 것들이 새 창조 안에 있도록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옛 창조의 모든 것은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하고, 십자가 안에 머물러야 한다. 교회 안에는 옛 창조 안의 것들이 전혀 쓸모가 없다. 교회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필요하다.

 

지체가 되는 것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의 차이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지체가 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개인적이지만, 지체가 되는 것은 단체적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지체가 되는 것은 몸을 위한 것이다. 성경에는 많은 대조적인 말이 있다. 예를 들면, 깨끗함과 더러움, 거룩한 것과 일반적인 것, 승리와 실패, 성령과 육체, 왕국과 세상, 그리스도와 사탄, 영광과 수치 등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대조적이며, ‘몸’은 ‘개인’과 대조적이다. 아버지와 세상이 대조되고, 성령과 육체가 대조되며 주님과 마귀가 대조되듯이 몸은 개인과 대조된다. 사람이 일단 그리스도의 몸을 보게 되면,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더 이상 자신을 위하지 않고 몸을 위하게 된다. 우리가 구원받아 개인주의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몸 안에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다만 하나의 지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교만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보는 것에 달려 있다. 자신이 지체임을 본 사람은 분명히 몸을 아낄 것이고, 다른 지체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또한 더 이상 자신의 좋은 점만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길 것이다. 모든 지체마다 기능이 있으며 그들의 모든 기능은 다 몸을 위한 것이다. 한 지체의 기능이 온몸의 기능이고 한 지체가 한 일은 곧 온몸이 한 것이다. 입이 말을 하는 것은 곧 몸이 말하는 것이다. 손이 일을 하는 것은 곧 몸이 일을 하는 것이다. 발이 걷는 것은 곧 몸이 걷는 것이다. 지체와 몸은 나눌 수 없다. 그러므로 몸에 있는 지체의 행동은 반드시 몸을 중심 삼아야 한다. 지체가 하는 일은 반드시 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에베소서 4장은 몸이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을 말하며, 개인이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3장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는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와 함께 아는 것이다. 어떤 믿는 이는 나비와 같이 단독으로 행동한다. 어떤 믿는 이는 꿀벌과 같이 무리를 지어 살고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 나비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자신의 달콤한 길을 간다. 그러나 꿀벌은 벌집을 위해 일한다. 나비의 생활과 일은 모두가 단독적인 노선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꿀벌에게는 전체에 대한 느낌이 있다. 우리는 마땅히 꿀벌과 같이 몸의 느낌을 갖고 다른 지체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살아야 한다.  [워치만 니 전집, 2집 24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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