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보여 준 모형에 따라(1)

생명의 느낌과 몸의 느낌
September 12, 2022
산에서 보여 준 모형에 따라(2)
September 27, 2022

생명의 흐름 94호 

 산에서 보여 준 모형에 따라(1)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속한 것들의 모조품과 그림자입니다. 모세가 성막을 완성하려고 할 때에도 ‘너는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형에 따라 모든 것을 신중하게 만들어라.’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히 8:5)

가장 긴요한 것

영적 일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바로 산에서 보여주신 식양 곧 모형을 아는 것이다. 영적 일의 많은 것들이 긴요하다. 그 중의 하나라도 결여되면 우리의 일은 영적 가치를 잃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지 못한다. 가장 긴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산에서 보여준 모형이다. 산에서 보여주신 모형이 곧 하나님의 계획이다. 만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분명하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히브리서는, 성막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모형을 따라 지어졌음을 말한다. 모세는 성막을 짓기 전에, 반드시 산 위에서 사십 주야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의 모형과 짓는 방법에 대한 지시를 받아야 했다. 성소에서 제단에 이르기까지, 성막을 덮는 네 겹의 덮개들에 어떤 재료와 어떤 색깔을 사용하는가에 대해서도 다 일정한 모형이 있다. 한 가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다 일정한 계획과 표준이 있다. 성막 안의 제단, 물두멍, 상, 등잔대, 향단, 언약궤, 또 다른 모든 것들의 재료와 치수와 색깔은 다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모형대로여야 했다. 단 한 가지도 모세 자신의 뜻을 따라 지은 것이 없다. 성막을 건축하는 것과 같이 교회 건축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계획이 있다. 모세는 성막의 모형을 설계하는 데 책임을 지지 않고, 오직 그가 산 위에서 지시받은 모형을 따라 만드는 데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우리의 영광은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명백한 뜻을 따라 일하는 데 있다. 모세는 성막을 지을 때 작은 못 하나까지도 금으로 써야 할지, 은으로 써야 할지 자신의 자유 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었다.

모세가 성막을 지은 것은 우리에게 많은 영적 빛을 준다. 성막에 관한 일들은 모두 다 하나님 자신이 규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한 가지 물건의 한 가지 방법도 모세에게 규정하도록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모세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짓는 큰 원칙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그 속의 세밀한 원칙도 함께 말씀하셨다. 모든 물건의 모양과, 색깔과, 재료와, 치수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까지도 하나님께서 규정하셨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치수와 모양을 따라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방법대로 지어야 했다. 예를 들어, 앙장은 가는 베실로 만들되,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어야 했다. 등잔대는 정금으로 만들되 정금을 쳐서 만들어야 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의견을 제시할 여지를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이 주장하고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 와서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구하는가?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지적하신 일에 대하여 그 시간과 방법을 구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예정과 계획과 규정대로 일을 하는가?

주제넘은 죄들

시편 19편 13절에서는, “또한 이 종을 주제넘은 죄들에서 지켜 주시어 그 죄들이 저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는 불순종의 죄요, 하나는 주제넘은 짓을 하는 죄이다. 하나님께서 행하라 하신 것을 당신이 행치 않을 때, 그것은 불순종의 죄이다. 이러한 죄는 우리 모두가 범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불순종의 죄가 있을 뿐 아니라 주제넘은 짓을 하는 죄가 있다는 것이다. 주제넘은 죄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지 않은 것을 행하는 것이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지 않음이요, 주제넘은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것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사람이 범하는 것은 죄이다. 우리는 이것이 죄임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우리 마음대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것이 죄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자신의 뜻을 따라 행했다면, 당신은 그 일을 가장 좋은 일이라 느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를 범한 것이다. 여기에서 다윗의 기도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이 종을 주제넘은 죄들에서 지켜 주시어”라고 구했다.

영적인 일의 가치는 그 일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에 합했느냐에 있다. 가장 긴요한 일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라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때와 방법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성령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참된 것이다. 자기의 생각이 아니요, 타인의 권면이나 지시도 아니다. 이러한 지식은 성경이 문자로 가리킬 뿐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그의 깊은 영 안에 계시해 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왔다.”고 말할 수 있을 뿐, “나는 보내심을 받아 왔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위 하나님의 일이라 하는 많은 일들이 죽음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 많은 일들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요, 사람이 하나님께 필요한 일로 여겨 열심을 내서 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일들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칭하지만, 사실상 그러한 일들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성분은 거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영적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다. 영적으로 쓸모 있는 일은 다 처음에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며, 우리는 다만 우리 안의 성령의 계시를 깨달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일은 그 규모와 성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 종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발원한 것이요, 다른 한 종류는 사람으로부터 발원한 것이다. 한 종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요, 다른 한 종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원하신다.”라고 생각한 데서 나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그 일의 시간과 때와 방법을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면, 그 일이 아무리 좋은 일일지라도 그것은 다만 혼 생명의 열심을 따라 행한 것일 뿐이다. 많은 일들이 ‘환경의 필요’를 위해서, ‘성도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하여, ‘죄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행해졌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해지지 않았다. 우리가 첫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죄인들과 성도들의 외적 필요보다도 이러한 때 하나님의 필요가 무엇인가에 있다. 우리의 일은 죄인의 필요나 성도의 필요보다도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것이다. 성령께서 사역을 위하여 불렀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 뜻을 따라 아시아로 갈 수 없었다(행 16:6). 아시아에 필요가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때 아시아에 하나님의 필요가 있느냐가 문제이다. 사도행전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우리의 일에 능력을 주시는 이도 성령이시요, 우리의 일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성령이시라는 것이다.

[워치만 니, 전집 2집 18권, 한국복음서원]

 

 

 

전화: 707-440-3412
이메일: highpeaktruth12@gmail.com

본 내용의 PDF 형식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시려면 클릭하세요.

Comments are closed.